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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그후]73년 만에 찾아낸 18초 동영상에 숨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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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지원 끊겨 자칫 발견 못할 뻔, 박원순 서울시장 후원으로 사업 재개...치밀한 추적으로 결국 찾아낸 조선인 위안부 영상

1944년 미군 사진병이 촬영한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촬영 영상. 사진 = 서울시 제공 영상 캡쳐

1944년 미군 사진병이 촬영한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촬영 영상. 사진 = 서울시 제공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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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지난 6일 73년간 먼지더미 속에 묻혀 있던 18초 짜리 흑백 동영상 하나가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서울시와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정진성 교수팀이 2년여간의 끈질긴 조사 끝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영상자료 속을 뒤져 찾아낸 세계 최초 '조선인 위안부' 동영상이 그 주인공이다. 영상 자료 발굴의 이면에 숨은 이야기들을 들여다보자.

▲ 박근혜 때문에 묻힐 뻔 했다가 박원순 덕에 살아났다?
서울시가 이 동영상 발굴 공동 발표 주체로 이름을 올린 것은 처음부터 기자들에게 의문이었다. 왜 지자체의 기본 임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위안부 동영상 발굴에 서울시가 끼어들었을까? 알고보니 사연이 있었다. 위안부 연구 분야의 선구자 격인 정진성 서울대 교수팀은 2014~2015년께부터 우리의 입장에서 위안부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조사ㆍ수집해야겠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기존의 위안부 관련 연구 자료들이 대부분 일본의 시각에서 정리ㆍ작성된 자료라는 점에 문제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정부도 처음에는 호의적이었다. 여성가족부가 지원에 나섰고 국회 예산 심의를 통해 예산 3억원을 배정받았다. 그런데 2015년 12월 한ㆍ일 정부가 위안부 관련 합의를 하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언론보도도 다 된 상태에서 정부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업을 취소한 것이다. 이에 예산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연구팀을 구원한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박 시장은 연구팀의 취지에 공감해 예산을 긴급 편성, 1억원을 지원했다. 이 돈은 연구팀이 미국 등지를 오가며 영상자료를 발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사진=서울시·서울대 인권센터 제공

사진=서울시·서울대 인권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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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아닌 '조선인 동영상'인 이유

일부 언론에 한국인 위안부 동영상 자료가 발굴됐다고 보도됐지만, 연구를 주도한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조선인 위안부 동영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당시 한반도 전역에서 끌려간 위안분들을 담은 화면이라는 것이다. 근거는 기존의 연구 자료에 담겨져 있다. 당시 미ㆍ중연합군이 작성한 '쿤밍(곤명) 포로 심문 보고서'에 따르면, 송산에서 포로로 잡힌 위안부들은 이후 중국군에 의해 쿤밍 수용소로 이송됐다. 이 수용소에는 조선인 25명이 있었고 이중 10명은 송산 지역의 위안소에서 체포된 위안부, 13명은 등충 위안소에서 체포된 위안부들이었다.

이들의 주소를 보면 서울, 진주, 논산, 한국 뿐만 아니라 평양, 평안남도, 신의주 같은 북한지역도 포함돼 있다. 특히 지난 2000년 기존 발굴된 위안부 사진에 있는 사람이 본인임을 증언한 고(故) 박영심 할머니의 이름도 정확히 표기돼 있다. 이는 이 동영상에 담겨진 이들이 조선인 위안부라는 결정적 증거라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5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강성현 서울대 교수가 1944년 미군 사진병이 촬영한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촬영 흑백 영상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5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강성현 서울대 교수가 1944년 미군 사진병이 촬영한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촬영 흑백 영상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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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보다 더 힘들었다"

"깜박 졸기만 해도 못 찾았을 겁니다." 강 교수가 이번 영상 자료 발굴 과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실제 자료를 찾기 위한 연구원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연구팀은 미군 사진 부대의 작업 행태를 연구한 결과 사진 촬영 요원과 영상 촬영 요원이 항상 같이 움직이면서 동일한 피사체를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버마, 인도 등에서 주로 활동했던 미군 164 통신대라는 부대가 있었고, 해필드 이병이나 코크랙 병장 같은 사진병들의 존재도 확인했다. 특히 이들의 사진 속에 에드워드 페이 병장이라는 사람이 송산에서 당시 영상을 찍고 있는 사진을 발견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연구팀은 이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본격적으로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카탈로그나 목록도 없는 상태에서 수천개의 밀봉된 필름통을 뒤져야 하는 난감한 작업이었다. 가능성 있는 것만 추려 200여통 정도를 골랐고, 2주가 넘는 동안 일일이 각 필름통을 영사기에 걸고 재생해가면서 확인한 끝에 결국 이번 영상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1944년 중국 쑹산의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모습. 사진 = 연합뉴스

1944년 중국 쑹산의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모습.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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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살아 온 그녀들

이번 영상을 발굴한 의미에 대해 연구팀은 "당시 위안부들이 처했던 상황과 실태를 보다 명확하게 증명해내는 중요한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위안부들이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에 발굴된 영상을 보면 가운데 당시의 현실이 기존 사진 자료보다 잘 드러난다. 기존 사진에 보면 포로심문중인 중국군 장교 앞에 여성들의 뒷모습만 보인다. 그런데 이번 동영상에선 해당 키작은 여성과 키가 큰 여성이 팔짱을 꼭 낀채 서로 밀착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두 사람이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동지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당시 미ㆍ중연합군은 결사 저항하는 송산 주둔 일본군을 포위 공격해 거의 몰살시킬 정도로 참혹한 전장터였다. 위안부들도 대부분 전쟁터에서 사망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각각 따로 떨어져 탈출해 생사를 몰랐다가 포로수용소에서 다시 만나게 된 사이였던 것이다. 또 맨 오른쪽의 여성은 일본인 포주로, 동영상을 보면 옷차림과 표정 자체가 여유가 있는 등 다른 조선인 위안부들과 차이가 확 드러난다.

▲위안부 문제 풀 계기 되나

강 교수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역사적 고증 자료로서 현재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위안부 문제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일본 측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재협상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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