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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굴떡국과 나박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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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오랜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하셨다.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차에 놀라 넘어져 뼈가 부러졌다. 인공고관절 수술을 받고 물리치료를 계속해야 하지만 두 달만에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 얼굴은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80이 넘은 고령 탓에 수술 후 폐렴 증세까지 나타나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응급실에 계신 동안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매일매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는 까다로운 분이다. 먹는 것부터 입는 것까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까다롭다. 남의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다. 잔칫집에 가도 마찬가지. 결혼식장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하면 좋으련만 아버지는 항상 집에 돌아오셔서 식사를 하신다. 가족 여행을 떠나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매일 드시는 반찬부터 챙긴다. 두 가지 이상의 김치, 들기름에 구운 김, 고부조림 등 5-6가지 밑반찬을 챙겨서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에 입에 맞는 식당이 없으면 숙소에서 식사를 하셨다. 병원에 입원한 동안 어머니는 병원 음식을 안드시는 아버지를 위해 두 달 내내 집에서 밥과 반찬을 실어 날랐다.
옷을 살 때도 보통 두 세 번은 매장에 가봐야 한다. 눈에 띄는 장식이 있거나 화려한 디자인의 옷을 싫어한다. 단순한 디자인만 좋아하신다. 아무리 좋은 브랜드의 옷이라도 상표가 크게 박혀 있으면 입지 않는다. 새옷을 사려면 좀처럼 쉽게 고르지 못한다. 한 달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철이 바뀐다. 이 모든 귀찮은 일은 모두 어머니의 몫이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비싸고 귀한 음식, 명품 옷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검소한 분이다. 외식을 자주하는 것도 싫어하고 비싼 옷은 마음에 들어도 사지 않는다. 단지 당신만의 까다로운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머리 손질도 당연히 한 곳에서만 하신다. 아버지가 직장에 다닐 때부터니까 지금까지 30년 넘는 단골 이발소만 다니신다. 이발소가 이사를 가면 아버지는 집에서 아무리 멀어져도 꼭 그곳만 찾으신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발소에 가고 싶어 하셨다. 한 달에 한 번씩 정확한 날짜에 머리손질을 하다가 오랜 기간 병상에 누워 계셨으니 웃자란 머리카락이 얼마나 거슬렸을까.

이발사가 반갑게 아버지를 맞이하며 두 달이 넘도록 오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어르신 손님이 많은 이발사는 단골의 갑작스러운 연락두절이 대부분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는 오랜 기간 이발소를 찾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고 거울 앞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랬을까.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머리를 깎고 싶어졌다. 나는 평소 미장원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아직 머리를 깎을 때가 되지 않았는데 그날만큼은 갑자기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앉아 머리를 깎고 싶어졌다. 어린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이발소를 다니던 때처럼.
나란히 앉았다. 하얀 가운으로 몸을 가리고 얼굴만 빼꼼 내민 자세로 서로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마주 볼 때보다 더욱 늙어 보였다. 그 옆에 앉은 나도 만만찮게 나이를 먹었다. 자신의 얼굴과 아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아버지가 말없이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빨리 고개를 숙였다. 빨리 표정을 고치고 고개를 들었다. 이발사가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는지, 아니면 지금 이런 모습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다는 것처럼.

20분도 채 걸리지 앉았다. 단정해진 머리가 마음에 드셨는지 한참 동안 거울을 들여다 보셨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굴떡국을 만들어 줄테니 점심을 먹고 가라고 하셨다. 나박김치도 맛있게 익었단다. 아버지가 외식을 싫어하게 만든 어머니의 맛있는 굴떡국과 나박김치.

임훈구 종합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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