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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나는 질문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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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조작사건 다룬 다큐영화 '자백'

영화 '자백'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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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회의 폐막 기자회견. 연설을 마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55)이 질문을 받았다. 술술 답변을 이어가던 그는 막바지에 "한국 기자들에게만 특별히 질문할 시간을 주고 싶다"고 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결국 중국기자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기자는 질문으로 먹고 산다. 그러나 우리 기자들은 소극적이다. 공익을 위해 출입기자단의 힘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64) 취임 1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기자회견을 하지 못했다. 뉴스타파 최승호 프로듀서(55)는 저서 '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에서 "우리나라 언론의 또 다른 비극"이라고 했다.

최PD는 보기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MBC 'PD수첩'에서 담당 부장을 맡다가 개별 프로듀서로 돌아갔다. 다시 현장에 나가 세상과 부딪치면서 뉴스타파 명함을 파기에 이르렀다. 나이가 들면 엉덩이가 무거워진다는 말을 스스로 경계했다. 그는 "언론인으로서, 저널리스트로서 다시 태어났다"고 했다. "PD수첩에서 쫓겨나고, (MBC에서) 해고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생각해보면 다행스럽고 행복하다."
영화 '자백'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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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각종 특종으로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다. 질문이 원동력이다. 고개를 내젓고 황급히 자리를 뜨는 이들을 끝까지 따라붙는다. 영화 '자백'도 다르지 않다. 막 떠나려는 자동차 앞을 막아서면서까지 묻고 또 묻는다. 최PD가 추적하는 이들 역시 다른 이들을 붙잡고 캐묻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강압과 조작이 배어있다. 국정원과 검찰이다. 2012년 탈북한 화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몬다. 증거로 동생 유가려씨의 증언 '자백'을 내민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유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최PD는 각종 증거를 수집해 사건을 바로잡는데 일조한다. 그리고 지난 13일 40개월의 스파이 조작 사건 취재기를 한데 묶어 공개했다.

자백은 탐사보도 다큐멘터리의 요건을 모두 갖췄다. 정확한 자료는 물론 부지런한 취재로 다양한 인터뷰를 담았다. 카메라는 최PD의 눈이 아니다. 그를 함께 비추면서 긴장감을 부여한다. 미국의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62)가 '볼링 포 콜럼바인(2002년)', '화씨 9/11(2004년)', '자본주의: 러브스토리(2009년)' 등에서 보인 구성과 흡사하다. 접근 방식은 다르다. 무어는 다큐멘터리를 할리우드 영화처럼 기획한다.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삽입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바탕에 나쁜 이들의 정체를 새겨 관객의 분노를 유발한다. 자신이 직접 카메라에 대고 문제제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설정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비는 탓에 거의 매번 논쟁의 불씨를 낳는다.

영화 '자백'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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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PD는 106분 동안 한 번도 카메라를 보지 않는다. 그저 발로 뛰고 입으로 묻는다. 그런데 앵글이 흔들릴 만큼 긴박한 상황이 자주 벌어져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자연스럽게 가미된다. 검찰과 국정원 관계자들의 침묵과 회피도 비소를 유발한다. 재판을 마치고 담배를 태우며 아무렇지 않은 듯 웃는 검사들, 우산 밑으로 목격되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65)의 웃음, 질문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7) 등이다.
자백에는 최PD의 주관이 개입된 샷도 있다. 특히 다양한 풍경 샷 등을 활용해 피해자들의 정서를 극대화한다. 유우성씨의 사건만을 조명한다면 문제되지 않겠지만 영화에서 다루는 사건은 꽤 많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피해자들에게 더 많은 조명이 비춰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자백'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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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PD는 간첩조작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 묻는다. 모두 무참히 고문당했지만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이들이다. 특히 1974년 학생 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평생 정신병증에 시달리는 서울대 유학생 출신의 재일동포 김승효 선생은 많은 여운을 준다. 그는 최PD의 질문에 계속 일본말로 답하다가 불현듯 한국말을 한다. "한국은 나쁜 나라입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한국은 나쁜 나라입니다." 수십 년 만에 터져 나온 한국말과 뚜렷이 기억하는 40여 년 전 비극. 질문의 힘은 위대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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