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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규칙과 아나키즘

최종수정 2020.02.11 14:00 기사입력 2016.02.23 11:05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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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의 목표는 '매일 달리지 않기'다. 작년에 매일 달린 탓에 왼쪽 다리에 약간의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년 나의 목표는 '매일 달리기'였다. 내가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한 것은 올해가 딱 20년째다. 1990년대 중반 미국에 유학을 가서 보니 대학원생들이 공부만이 하는 게 아니라 달리기든 수영이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 후로 규칙적으로 달렸다. 그렇다고 '매일' 달리는 것을 심각하게 시도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던 중 재작년에 우연히 신문기사에서 수십 년 동안 매일 달린 사람 얘기를 읽게 되었다. 마크 코버트라는 이름의 1950년생인 미국인은 1968년 7월부터 매일 달리기 시작했다. 좀 더 찾아보니 코버트의 기록은 세계 2위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매일 달린 사람은 1936년생 영국인 론 힐이었다.
아무튼 40대 중반을 넘어서는 기념비적인 해에 뭔가 해보고 싶은 욕심에 작년 1월1일 영하 10도 새벽에 달리기를 시작해 12월31일 햇볕이 환한 대낮에 매일 달리기를 마쳤다. 그런데 사실 '매일' 달린 건 아니었다. 막상 결심을 하니 '만약 내 의지와 무관하게 매일 달리지 못하게 되면 어떡할 것인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예외를 정한 것이 매일 달리되 부득이하게 못 달릴 경우에는 하루 이상 건너뛰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덕분에 365일 모두 달리지는 못했지만 300일 넘게 '거의' 매일 달렸다.

규칙이 규칙다울 수 있는 건 규칙을 어겼을 때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생각해놓았기 때문이다. 규칙 자체의 내용이 얼마나 정합한지보다는 규칙이 어그러지거나 무너졌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애들에게 저녁에는 패스트푸드를 안 먹이겠다고 결심해도 하루 종일 녹초가 되도록 일하고 들어오면 지키기 쉽지 않다. 이럴 땐 차라리 얼른 배달시켜 먹고 쉬는 것이 더 건강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사소한 가정의 규칙만이 아니라 국제정치에서도 규칙의 진가는 규칙을 위반하거나 규칙에 예외가 발생했을 때 나타난다. 핵확산금지조약에서 기후변화협약까지 늘 문제가 됐던 건 조약을 탈퇴하거나 협약비준에 실패하거나 국가 간 약속으로 정해 놓은 규칙이 깨졌을 경우다.
가정이나 학교, 사회생활에서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규범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강한 호소력을 지녔기 때문에 규칙이 깨질 경우에 대한 논의는 부차적이고 병리적인 차원으로 전개된다. 웬만하면 규칙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를 강조하지, 규칙을 어겨도 되는지, 규칙을 어겼을 때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 잘 안 가르쳐준다. 2013년 어느 대학생 설문 조사에 따르면 규칙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58%가 어겼을 경우 편익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37%가 지키지 않아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응답했다. 어겼을 때 더 유리하고, 어긴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그런 규칙은 왜 따라야 하나.

론 힐과 같은 해에 태어난 예일대의 저명한 정치학자 제임스 스콧은 최근 번역된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라는 저서에서 어겨서는 안 되는 규칙이란 거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규칙을 가장 해치는 것은 규칙의 맹목성, 그러니까 규칙이니까 지켜야 한다는 무비판적인 믿음이다. 일례로 어느 독일 마을에 연구차 머물 때 겪은 경험을 소개한다. 이 마을에는 큰 교차로가 있는데 대낮에는 차들이 붐벼 신호등을 한참 기다려야 건너갈 수 있다. 그런데 밤 9시가 넘으면 차량 통행이 끊겨 찻길이 텅 비는데도 수십 명의 행인들이 4, 5분씩 기다리며 서 있다. 신호등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180도 달라진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판단을 유보해버린 것이다.

규칙을 규칙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규칙의 작동원리를 아나키즘의 정신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제정치에서 가장 많은 연구와 논쟁이 이루어지는 핵확산금지조약과 기후변화협약의 공통점이 바로 국제정치의 아나키적 속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슈라는 점이다. 아나키즘의 정신으로 들여다보면 성공적인 규칙이란 어겨도 되는 규칙인데 어기면 본인이, 또는 자국이 더 힘들게 되는 규칙이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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