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 작가 “유려한 번역의 표현이 申의 ‘전설’에 나온 건 의식적 도용”
#2.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신경숙 ‘전설’ 中, 1996년 ‘오래전 집을 떠날 때’에 수록, 소설집 제목이 2005년 ‘감자 먹는 사람들’로 바뀜)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다른 번역과 비교하면 더 잘 이해된다.
#3. 두 사람 모두 실로 젊고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들이라 이들의 사랑 행위는 매우 격렬하였는데, 이것은 밤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훈련에서 돌아온 중위는 먼지투성이 군복을 벗다가 그 틈도 참지 못해, 집에 돌아온 그 자리에서 아내의 가는 허리를 꺾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곧잘 이에 응하였다. 첫날밤으로부터 한 달이 채 될까 말까 할 때, 레이코는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 중위도 이를 알고 기뻐하였다. (2003년 황요찬 번역으로 출간된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憂國) 中, ‘이문열 세계명작산책2’에 게재, 살림 펴냄)
이응준은 16일 허핑턴포스트 기고에서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는 경륜 있는 시인 김후란의 유려한 번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신경숙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받아 적다보니 시인 김후란 번역의 ‘우국’(憂國) 속 저 부분을 표절한 ‘전설’의 그 부분이 저절로 나타나게 된 거라고 주장하려면, 가령, 자신의 집 앞에 커다랗고 둥근 바위 하나가 있었는데 어느 밤 태풍이 몰아쳤고 이튿날 맑게 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그 커다랗고 둥근 바위가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똑같은 양으로 간밤 비바람에 깎여 있더라는 해괴한 어불성설을 명쾌한 사실로 증명해내야만 할 것”이라고 빗댔다.
신경숙이 스스로 저 문단을 썼는데 김후란이 번역한 미시마 글과 비슷하게 된 결과는 발생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그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 보인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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