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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식탐,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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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사회문화부 선임기자

이규성 사회문화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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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식탐에 대한 쓰나미가 우리 사회를 덮쳤다. 이른바 '먹방(먹는 방송)'으로 불리는 문화현상이다. 이제 우리 사회의 먹방은 세계적인 관심거리다. 우리 문화 소비에서 가장 특이한 사례인 '먹방'에 대해 외국인들은 놀라움을 표시한다. 아예 프랑스 언론은 '푸드 포르노'라며 다른 이의 식탐을 관음하는 풍조로 해석한다. 어린아이들도 먹고, 어른들도 먹고, 심지어 수많은 이들이 식신로드를 따라 원정을 나설 만큼 대한민국의 식탐 열풍은 멈출 기세를 모른다. 여전히 새해 들어서도 먹방은 맹위를 떨친다.

다들 식탐을 자랑하고, 서로 지켜보는 걸 즐기며 욕망의 해방을 부추기는 기현상은 이제껏 유례없는 일이다. 본래 우리 문화는 남들이 밥 먹는 것을 지켜 보지 않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먹방 전문 채널마저 생겨나 인기를 끈다. 먹방을 틀어놓고 밥을 먹는 이도 많다. 먹방을 보며 밥을 먹을 때 더욱 즐겁고 맛이 좋다는 이유에서다. 이해가 되는 말이다. 실제로 TV에서 술 먹는 장면이 나오면 맥주가 당기지 않는가.
반면 먹방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 백수, 쪽방촌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년, 양극화와 차별에 시달리는 세상의 잉여들이다. 따라서 밥 한 끼가 절실한 사람에게는 황망하고도 폭력적인 방송에 다름 아니다. 위안과 치유의 밥이라면, 함께 나누어 즐거운 밥이라면 굳이 피로할 일은 없다. 어느 덧 밥 먹기가 식탐으로 변질된 상황에서 먹방은 간절하고도 따뜻한 밥 먹기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요즘 유행하는 소셜다이닝도 마찬가지다. 외로운 식사를 이겨보고자 하는 이런 행사 역시 슬픈 얘기다. 인터넷에서는 소셜다이닝 행사에 다녀왔다는 후기가 심심찮게 올라 온다.

예전에는 낯선 이들과의 밥 한 끼라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행사가 일상의 활력을 주는, 즐거운 이벤트다. 가족들이라도 식탁을 마주 하기 어렵다 보니 정작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식탁만 공유하는 셰어하우스처럼 느껴지기 일쑤다. 가족조차 함께 밥 먹기가 어려워진 세상에서 낯선 이라도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 게 매우 소중할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도 1인가구가 전체 가구의 25%를 넘어선다. 이에 인간관계의 단절이 심화돼 우리를 더욱 낯선 이들과의 저녁 식사자리로 불러내고 있다. 세계적인 자살국가 '한국', 양극화와 노인 빈곤, 청년실업, 만혼, 1인가구의 증가 등으로 우울한 현실에서 밥을 먹는다는 원초적인 욕구는 더욱 절실할 수 있다. 즉 먹방세상은 우울한 현실이 비롯됐다는 건 분명하다. 1인가구와 함께 싱글 다이닝이 늘고 외로움에 지친 사람들이 서로 먹는 모습을 지켜봐 주는 현상은 결국 인간관계의 단절에서 기인한다.

실상 먹방은 다이어트와 외모지상주의, 경쟁, 1인가구의 증가, 소외와 단절 등 우리 사회 모순의 변증적인 반작용이다. 사람들은 미모가 뛰어난 이들이 사회생활에 유리하고 기회가 더 많다고 인식한다. 그런 이유로 경쟁에 이기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성형하는 등 외모 가꾸기에 혈안이다.

또한 다이어트에 빠진 사람들은 비만을 경멸한다. 그래서 먹고 살찌우게 하는 지방질을 기피한다. 여기에는 일종의 죄의식이 작동한다. 그 죄의식은 먹으면서 경멸하는 이중적 태도, 과식에 대한 부담감으로 표현된다. 이 또한 '취업성형'처럼 과도한 경쟁이 빚은, 슬프고도 안쓰러운 현상이다. 먹방 소비의 이면에는 과도한 경쟁, 사회 분화 등이 낳은 외로움과 허전함, 결핍이 작용하는 셈이다.

하지만 먹방에 대한 과잉, 과소비를 경계하는 목소리는 미약하다. 식욕은 원초적인 욕구다. 이에 즐겁고 행복한 밥, 생명을 이어주는 밥, 세상의 루저들과도 나눌 수 있는 밥은 어떤 밥일까 다시금 자문해 본다. 나아가 올해는 사려 깊은 방송, 세상에 편승하고 영합하지 않는 방송을 기대한다.





이규성 사회문화부 선임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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