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15세기에 '고마'라는 명사가 있었다고 한다. 존경이라는 의미로 쓰인 말이다. 여기서 '하다'가 붙어 '존경하다' '우러르다'라는 뜻의 '고마하다'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러나 '고마하다'라는 말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다. 16세기에는 '고마오다'라는 말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지금의 '고맙다'와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 '고마오다'라는 말을 누군가가 오분석하면서 '고맙+온'으로 풀어서, '고맙다'라는 형태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말에는 이 말을 '곰압다'로 다시 잘못 풀어 이해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은, 1912년 '만인계'나 1922년 나도향의 '환희'이다.
한자도 아닌 '고마오다'는 왜 16세기에 나타났을까. 한글 기록이 더 풍성해지는 것과 관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조선의 내면이 무르익는 시기인 이 무렵의 인간관계의 성숙을 떠올려본다. 조선은 14세기말에 세워져, 15세기 내내 쿠데타로 시작한 왕국을 합리화하고 통치의 안정을 꾀하느라 깊이 있는 인간관계가 성기었을 가능성이 있다. 나라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경국대전이 완성되고 조선의 기틀이 갖추어지는 때에 이르러, '고마움'이라는 감정이 구체적으로 표현될 필요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무엇인가를 고마워하고 누군가를 고마워하는 일은, 마음의 여유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6세기는 조선이 비로소 고려 콤플렉스를 씻고, 스스로의 주체성과 자부심을 갖추면서, 고마움을 돌아볼 수 있는 여력이 생긴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그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그때까지 쓰이던 비슷한 표현을 찾으려 애썼을 것이다. '고마'라는 말이 존경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어떤 상대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고마하다'에서 '고마오다'라는 말을 변주해냈는지도 모른다. 고마움이란 상대에 대해 고개를 숙이는 일이기도 하니, 남을 높이고 스스로를 낮추는 측면이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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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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