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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 탄생 100주년, '첫 종군기자'의 앵글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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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로버트 카파의 사진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

로버트 카파의 사진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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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r pictures aren't good enough, you're not close enough./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아서다.”

최초의 종군 기자 로버트 카파(1913~1954)가 남긴 명언이다. 카파는 죽는 순간까지 전쟁의 참혹상을 알린 기자 정신의 표상으로 남아 있다.
지금에야 카메라 기술이 뛰어나고 다양한 촬영장비가 개발돼 피사체에 근접하지 않더라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러나 카파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포탄과 총알이 난무하는 전장에 아니고서는 전쟁터의 제대로 된 모습을 찍을 수 없었다. 그래서 카파는 총탄이 빗발치고, 병사들의 시신이 즐비하게 쓰러져 가는 전선의 맨 앞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카파의 명언은 차라리 "초현실적인 상황"으로 비쳐질 지경인 전쟁터에서만 적용되지 않는다. 어쩌면 날마다 전쟁같은 일상의 어디에서도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숙명을 달리 표현한 것으로 읽혀질 수 있다. 지금 전쟁은 지구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전쟁과 인간의 비극적 스토리는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중이다.

또한 카파 시대의 전쟁은 에너지 전쟁, 식량 전쟁, 환율전쟁, 무역전쟁, 특허전쟁, 자연 및 환경 재해 등 오늘날 다른 전쟁의 형태로 치환됐을 뿐 그 본질은 그대로다. '누군가는 잔인하고 참혹하게 죽어가고, 또 누군가는 삶을 이어가야한다는 것 !' 그래서 더러운 전쟁판 위에서도 인간애를 증명해야하는 일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로버트 카파 사진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에 촬영한 사진. 제2차 세계대전의 보도사진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로버트 카파 사진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에 촬영한 사진. 제2차 세계대전의 보도사진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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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6월 6일 이른 아침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카파는 2000명의 군사들과 함께 참가했다. 카파는 “오마하 해변”이라는 작전명으로 미 육해 합병군의 프랑스 쪽 노르망디 해변 상륙하는 것을 카메라에 담았다. 동이 틀 무렵 그는 가장 먼저 부대와 함께 배에서 내려 해변을 지키는 적진을 뚫고 군인들 속을 누볐다.
“총알이 나를 비껴가 물을 때리고 있었고 나는 가장 가까이 몸을 숨겼다. 좋은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 이르고 어두웠다. 하지만 잿빛 바닷물과 잿빛 하늘은 군사들이 히틀러의 반침략 작전이 가져온 초현실적인 상황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카파에 의해 유럽 운명을 건 전투사진은 인화 과정에서 조수의 실수로 필름 대부분 망가졌다. 겨우 10장의 사진만이 오마하 공격 시 최악의 시간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로버트 카파의 사진. 공습경보가 울리자 피난처를 향해 달리는 엄마와 딸. 스페인 빌바오. 포토저널리즘 사상 가장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다.

로버트 카파의 사진. 공습경보가 울리자 피난처를 향해 달리는 엄마와 딸. 스페인 빌바오. 포토저널리즘 사상 가장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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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카파의 사진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전쟁에 대한 혐오가 내포돼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저널리즘 사진의 속성인 충격적인 고발과 폭로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비극성까지 그려내 준다.

카파의 사진 중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의 죽음이 그것이다. 이 사진은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전선에서 돌격하려던 병사가 머리에 총알을 맞고 즉사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병사는 순교자처럼 팔을 벌리고 약간 찡그린 표정으로 엉거주춤 무너지는 모습은 차라리 비장해서 우아할 정도다.

전장에서 죽어가는 이들은 누군가의 아들이며, 또 어느 여인의 남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은 그가 누구인지를 구별하지 않는다. 나아가 전쟁의 비극은 처참한 죽음못지 않게 죽음 그 너머 살아남은 자의 몫으로 다시 남겨진다.

병사가 세상과 작별하는 찰나의 순간 마치 카파의 렌즈속에서 잘 그려진 그림처럼 다시 태어난 병사의 죽음은 카파의 진정성이 전쟁의 혐오스러움을 전달하고자 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나 전쟁은 결코 카파마저 비켜가지 못 했다.
1938년 12월호 '픽쳐 포스터'에 실린 카파의 모습.

1938년 12월호 '픽쳐 포스터'에 실린 카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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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카파는 라이프 잡지의 다른 사진작가를 대신해 한 달 동안 베트남 전쟁을 취재 했다. 전쟁은 거의 끝나가던 5월25일, 카파는 지뢰투성이인 길을 따라 프랑스 군과 마지막 후퇴 작전에 돌입했다.

이동 중에 카파는 호송차량을 떠나지 말라는 군인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차량을 이탈했다. 다른 기자들과는 달리 “단 한 곳이라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난 무조건 그곳에 갈 거야”라는 욕망을 주체할 카파가 아니었다. 카파는 길에서 벗어나 병사들과 아주 가까이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는 대인지뢰를 밟고 숨졌다. 로버트카파는 베트남에서 죽은 최초의 미 종군 기자다.

로버트카파(본명 앙드레 프리드먼)는 1913년 10월 22일 헝가리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1931년 정치적 박해와 반유대주의자들을 피해 베를린으로 피신한 그는 그곳에서 사진 에이전시 데포트의 암실조수로 취직하면서 사진과 조우했다. 이후 로버트카파로 개명한 그는 스페인 내전부터 노르망디 상륙작전, 인도차이나 전쟁 등 20세기 현대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쟁터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카메라를 들고 전쟁터를 누볐던, 또 끝내 그 전쟁터의 한가운데서 짧은 삶을 마감한 로버트카파. 그는 현대 사진역사의 새 경지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취재정신의 표현인 '카파이즘'은 자기희생과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치열한 작가정신을 의미한다.

카파는 치열했던 삶만큼이나 유명인들과 교류도 활발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윈 쇼, 존 스타인벡과 함께 전쟁터를 누볐고, 피카소와 마티스 등 화가들과도 예술적 교감을 나눈 것으로 유명하다.

강제 수용소로 이동하고 있는 스페인 난민들. 프랑스 바르까레.

강제 수용소로 이동하고 있는 스페인 난민들. 프랑스 바르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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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저널리즘의 거장 카파 사진전이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오는 10월까지 전시된다.로버트 카파 탄생 100주년과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로버트카파 기념재단인 뉴욕 국제사진센터가 소장한 160여점의 오리지널 프린트가 전시된다. 또 로버트카파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과 로버트카파의 다양한 소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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