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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 춘향이의 눈물과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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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소설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읽혀지는 작품은 아무래도 춘향전일 것이다. 지금도 이 작품은 소설을 뛰어넘어 뮤지컬,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로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다. 시대를 초월해 계속해서 관심을 끄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아마도 양반과 상민, 암행어사와 시골 수령 등 대립적 구성요소가 독자들로 하여금 긴장감과 상상력의 바다에 빠지도록 하기 때문이리라. 이를 통해 당시 민중은 삶의 억압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춘향전 전반부는 사실(fact)일 개연성이 높다. 지체 높은 가문 도련님과 기생 딸이 엮어내는 사랑 이야기는 당시 사회 분위기로 보아 충분히 가능하다. 오늘날에도 재벌가나 권력가의 바람기 있는 아들과 시골 처녀의 순진한 사랑은 무궁무진한 얘깃거리를 쏟아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후반부 사건은 사실일 개연성이 떨어진다. 춘향에게 정신이 팔린 이몽룡이 한양으로 올라가 냉큼 1년 만에 장원 급제하고, 바로 그 해 암행어사로 내려오는 것이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고시 합격은 어려운 법. 설사 1년 만에 장원 급제를 했더라도 암행어사 직책을 받기에는 10년은 족히 걸렸다.

소설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므로 작가의 역량과 사상적 깊이에 따라 사실 관계를 뛰어넘는 이야기 구성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아픔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철학적 사고가 작품에 묻어난다. 춘향전에 나타난 시대의 아픔을 현재 우리네 모습과 대비해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중 첫째가 양반과 상민으로 구별되는 신분체계에 대한 극복 열망이다. 춘향이 아무리 한 남편만 섬기는 일부종사(一夫從事)를 했다고 하여도, 기생 딸이 사대부 집안 자제의 정실부인이 된다는 것은 당시 제도가 허락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라. 사랑하는 여인을 버릴 수 없어 국왕 지위를 포기한 영국 윈저 공작의 경우를 보면 사회제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재벌이나 권력가들은 그들끼리만 혼인관계를 맺는다고 한다. 평민이 범접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새로운 신분체계를 꿈꾸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둘째는 부정부패에 대한 고발이다. 변 사또가 자신의 생일날 그처럼 거방지게 생일상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나라 세금을 훔쳐서 한 짓이다. 당시 세제는 지방 수령이 세금을 징수해 일부만 그 고을에서 사용하고 나머지는 중앙정부인 왕실에 상납하는 방식이었다. 세금은 논과 밭의 수확량을 근거로 부과되는데, 이를 조작해 착복한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세원을 노출시키지 않는 방법이다. 하기야 집 근처에 은행이 있어도 굳이 장롱 속에 현금을 몇 억원씩 숨겨놓는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부정한 돈을 탐하는 버릇은 여전한가 보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복지사회 추구다. 이 도령이 거지 차림을 하고 변 사또 생일 잔칫상에 가서 밥 한술 먹기를 청하자 변학도가 공짜는 없다면서 운(韻)을 띄울 테니 시라도 한 수 지으라고 한다. 제시된 운은 '기름 고(膏)'와 '높을 고(高)'자다. 이에 이몽룡은 "옥쟁반의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膏)이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더라(高)"는 시를 지어 그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당시 민초의 고달픈 생활상이 고스란히 노정돼 있다. 그 무렵에도 소득의 양극화가 극심했던 것이다.

요즘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진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그러나 부자들은 추가적인 세금 부담을 기피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세금이 문제다. 춘향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더 이상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바뀌는 이 시기에, 뱀처럼 지혜로운 해결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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