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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과의 전쟁- 파르티잔과 테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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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공순 기자]“대포로 모기를 쏘는 것은 모기로 대포를 쏘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독일의 현대 시인 헬무트 바이센뷰탈)

지난 80,90년대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캘빈과 홉스’라는 4컷짜리 신문 연재 카툰이 있다. 어린 소년과 캘빈과 호랑이를 의인화한 홉스가 세상을 풍자적으로 바라보는 이 만화 중에 소년이 학교 체육수업을 빼먹는 내용이 나온다. 소년은 체육시간을 ‘국가 후원 테러리즘’(state-sponsored-terrorism)이라고 부른다. 9.11이 발생하기 10년도 더 전의 일화다.
적어도 지난 세기까지 미국에서 테러리즘은 ‘국내용’이었다. 미국의 가장 큰 테러 위협은 중남부의 4만여개가 넘는 ‘밀리샤’(무장민병대)였다. 그리고 남북전쟁이후 가장 큰 ‘테러’ 사건은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연방정부의 웨이코 진압 작전에 분노한 극우주의자의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사건이었다.

9.11 사건이 벌어졌을 때, 미국이 제일 먼저 고민한 것은 그들이 무엇이라고 규정해야 하는가?였다. 알카에다는 국가도 아니며, 영토를 갖고 있지도 않고, 통일된 명령 계통도 없다. 그들은 그저 동일한 ‘신념’으로 무장한 분산된 네트웍이었을 뿐이다. 미국은 알카에다를 ‘테러리스트’라고 불렀지만, 역사에는 이들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들이 있었다. 파르티잔(partizan).

서구에서 파르티잔의 역사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는 프랑스의 점령에 항거한 스페인의 농민들의 항거를 그 첫 번째로 꼽는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토지긴박적인 비정규 무장조직”이 파르티잔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점령’에 항거할 뿐, 자신의 영토 이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2차 대전중의 소련과 유고, 이탈리아에서의 반독일 무장투쟁과 월남전은 이들의 행동양식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파르티잔은 국제법의 맹점(Loophole)이었고 제도로서는 규정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칼 슈미트는 질문한다. 그들을 ‘군인’으로 볼 것인가? 서구의 역사에서, 그리고 국제법의 역사에서 전쟁은 “제복을 입은 군인 사이의 무력 대결”이었다.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하여 사회를 파괴해야 한다는 ‘토탈 워(total war)’의 개념이 1차 대전 말기에 수립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쟁은 국가와 그 국가의 전문적 무사들 사이의 투쟁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파르티잔은 총은 들었지만, 군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전쟁의 대상이 아니라, 형사 처벌의 대상인가? 파르티잔이 수행하는 것은 여전히 전쟁이기 때문에 그것을 범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칼 슈미트는 이 난점을 제도화의 한계, 국가의 한계라고 보았다.

알카에다로 대표되는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무장조직은 ‘국가’를 배경으로 하지 않는 새로운 비정규 무장 투쟁의 양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여전히 ‘토지’에 속해있지만, 그 토지는 유형의 영토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영토들, 예컨대 생활 양식이나 신념들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점령군으로서의 미군의 힘은 ‘군사적’ 의미에서는 압도적이다. 그러나 미군은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확정할 수 없다. 누구를 공격할 것인가? 아프간의 무장 세력은 집결된, 전문화된 군사조직이 아니다. 낮에는 농부였다가 밤에는 전사로 돌변한다. 따라서 미군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적’이거나, 아니면 모두가 아무 것도 아니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미군에 의한 민간인 사상자가 그토록 많이 난 것은 적을 식별할 수 없다는 공포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무차별적인 민간인 공격이 전쟁법상으로, 또는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미군이 점령을 강화하면 할수록, 그에 따르는 ‘휴머니즘 관점’의 비난도 커진다. 미국이 공격 대상을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반면에, 파르티잔의 입장에서는 공격 대상이 단순하다. 그들은 ‘미군’으로 한정하지 않고 미국과 미국을 지지하는 모든 세력으로 전쟁의 논리를 구성한다. 즉, 알카에다에게는 ‘적’이 보이는데 반해, 미국으로서는 ‘적’을 규정할 수 없다. 무력의 비대칭성은 피아식별의 비대칭성에 의해 상쇄된다. 이었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이 영토는 ‘이슬람’이라고 불렸다.

9.11 이전에 미국은 자신들이 무력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심각하게 생각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미국은 이슬람에 대해 정치적으로, 상징적으로 영향력을 갖고 있을 뿐 군사적으로 점령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카에다나 혹은 무슬림 전사들은 미국의 이슬람에 대한 영향력을 ‘지배’와 점령으로 보았다. 즉 그들의 신념에 대한 지배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알카에다의 이성은 지난 8월 노르웨이에서 자국민을 무차별 사살한 브레이빅과 동일하다. 그는 신념과 문화를 해치는 것, 자신들이 살아온 대로 살 수 없도록 변화를 요구하는 것을 침략이라고 보았고, 따라서 거기에는 전쟁의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알카에다의 논리도 동일하다. 따라서 알카에다와 아프간에 ‘민주주의’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력이며 공격일 수 있다. 상호간에 이성과 논리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적 힘은 넘치지만, 총으로 신념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들의 토지를 공격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념도 공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프간 국민들이 모두 서구인이 되기 전에는, 그들의 ‘테러’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다. 이같은 인식의 비대칭성은 아프간에서의 미국의 전쟁을 알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만들었다. 본토에 있는 미국인들은 TV 화면에 전쟁 장면이 나올 때마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저 산 속에 있는 넝마를 입은 이슬람들과 왜 우리가 전쟁을 하고 있는가?”가로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전쟁이 의문을 동반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이길 수 없는 기나긴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공순 기자 cp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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