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을 때였다. 일면식(一面識)도 없는 기사 아저씨가 나를 보자, 유난히 반가워하며 "탕겐! 탕겐!"하며 말을 건네 왔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에 당황스러웠다. 내가 못 알아듣는 걸 눈치 챘는지, 아저씨는 우즈벡 말로 이런저런 예시까지 들어가며 풀어서 설명해줬지만, 결국 난 알아듣지 못하고 "케츠라쓰스(Kechirasiz!, 미안합니다)"라며 얼버무렸다.
그때 아저씨는 뭔가 좋은 수가 떠올랐다는 듯 무릎을 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음정· 박자는 모두 형편없었지만, 그때 아저씨가 불러줬던 노래가 아직도 귀에 아른 거린다. 너무나도 익숙한 노래였기 때문이다.
가다라 가다라 아주가나♬
나나니 다려도 못노나니♪
아니리 아니리 아니노네♬
그렇다. 아저씨가 날 보고 반가워했던 것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저씨가 했던 "탕겐! 탕겐!"이란 말은 장금의 우즈벡 발음으로, 드라마 '대장금'을 뜻하는 것이었다. 나는 택시에서 내릴 때 쌩긋 웃으며 "라흐맛(Rahmat, 고맙습니다)"이라고 말했다.
대장금은 방영된 지 한참 됐지만, 우즈벡에선 여전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최고 한국 드라마로 꼽힌다. 대장금과 쌍벽을 이룰만한 드라마로는 이곳에서 '지모이 소나타'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겨울연가'다. 이 드라마의 인기도 대단했는데, 겨울연가는 시청률 60%를 기록하며 최고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겨울연가 방영 후 머리가 조금 긴 한국 남자들은 "준상!"을 외쳐되는 우즈벡 여자들 때문에 곤욕을 치루기 일쑤였다. 우즈벡에서 한국 남자들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이는 절반 이상 배용준 덕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장금· 겨울연가의 인기 후 고정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의 수도 부쩍 늘었다. 불멸의 이순신, 허준, 장보고, 주몽 등 시대물부터 여름향기, 가을동화,불새, 올인, 별을 쏘다 등 현대물에 이르기까지 장르 구분 없이 많은 드라마들이 우즈벡에서 TV전파를 탔다.
한류 열풍은 초등학교부터 한글을 배우게 만들었고, 한국어 배우기 열풍까지 불러일으켰다. 우즈벡 사람들은 한국 음식· 한국 차 등 한국 것이라면 무조건적인 애정공세를 펼치고 있으며, 한국의 패션이나 문화를 따라하는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한국에선 TV를 즐겨보지 않던 나도 우즈벡에 온 뒤 이곳 사람들과 얘기하기 위해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다. 이젠 택시 기사아저씨들이 "탕겐! 탕겐!"하며 말을 걸어오면 나도 모르게 "오나라♪ 오나라♬~"하며 맞장구를 친다. 가끔씩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열렬히 내 모국(母國)을 자랑하기도 한다. 문득문득 이런 내 모습을 볼 때면 '내가 바로 민간 외교사절이자, 애국자'라는 생각에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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