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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의 여행만리]100년 세월에 익은 삶의 향기, 한잔 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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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술이 익어가는 100년 된 목도양조장 여정

10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괴산 목도양조장.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석일, 유기옥부부.

10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괴산 목도양조장.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석일, 유기옥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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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에서 대대로 사용하고 있는 술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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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은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때마다 세월의 흔적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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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거르기 앞서 최종 점검을 하고 있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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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도양조장에서 나오는 1종류의 약주와 3종류의 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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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실에는 오래된 술항아리가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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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한 술관련 전시품과 목도양조장에서 대대로 사용한 술도구들을 설명하고 있는 이석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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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부터 사용한 목도양조장 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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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도 맑은술의 빛깔이 은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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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바쁜 농사철, 어린아이의 양손엔 작은 양은주전자가 들려 있습니다. 논두렁을 따라 새참으로 나온 막걸리 배달을 가는길입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찰랑찰랑 주전자 안에서 막걸리가 춤을 춥니다. 주전자 주둥이로 막걸리가 넘칩니다. 흘리는 막걸리가 아까워 주둥이에 입을 가져다 대곤 홀짝이기 시작합니다. 달큼한 맛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갑니다. 한 모금을 더 합니다. 그리곤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중장년의 남자라면 이런 추억 하나쯤은 끄집어 낼 수 있겠지요. 모내기철 바쁜 부모님 일손 돕는 착한 아이는 그렇게 막걸리 한 모금에 넉다운 되어 저녁해가 넘어갈 때 쯤 정신을 차린 기억말입니다. 여행만리는 이런 막걸리의 추억을 찾아갑니다. 그것도 100년의 세월을 함께한 우리 전통막걸리를 빚는 곳입니다. 오래된 기억과 역사를 품은 그곳은 오늘도 술을 빚고 손님들에게 그 맛을 전하고 있습니다. 술을 만드는 이의 철학과 고집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바로 충북 괴산 목도양조장입니다.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괴산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가는길 내내 막걸리 한 잔과 고소한 빈대떡 한 점이 머리속을 맴돌았습니다.


괴산 목도양조장의 문을 살며시 여니 술이 익어가는 냄새가 반갑게 맞는다. 비 내음에 실려오는 막걸리 특유의 냄새는 예사롭지 않다. 목도양조장은 100년 역사를 바라본다. 시간과 공간이 그대로 멈춰져 있는 듯한 양조장 곳곳은 술박물관 같다. 낡은 서까래, 격자 창문, 술통과 항아리가 역사를 넌지시 알려준다.

1920년 일본인으로부터 출발한 목도양조장은 1939년 괴산주조주식회사 목도공장 때 한국인 경영으로 바뀌었다. 목도양조장의 창업주인 유증수 씨는 이미 1931년 괴산읍에서 양조장을 운영했다. 이후 첫째아들인 유종희씨가 물려받았지만 일찍이 세상을 떠나 실질적으로 40여년 가까이 며느리인 이순근 여사가 운영했다. 지금은 창업주 손녀인 유기옥(64) 대표가 맡아 3대째 운영하고 있다.


유기옥 대표와 함께 양조장을 이끄는 이는 남편 이석일(68)씨다. 의사인 남편은 주중엔 분당에서 일하고, 금요일 진료를 마치면 내려와 주말 내내 양조장 일을 한다.


양조장을 하게 된 계기를 묻자 유 대표는 "역사와 전통,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스며있는 양조장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가업을 이어받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부부가 목도양조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2013년이다. 이씨는 "2012년 강경, 군산, 논산으로 답사를 간 적이 있다. 군산의 적산가옥 등을 보면서 우리 양조장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며 "아무런 대책 없이 이부자리 하나 달랑 들고 괴산으로 내려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부터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낯설고 힘든 일의 연속이었다. 부부는 "인부를 써가면서 여유 있게 막걸리 만드는 일을 할 줄 알았다. 그것이 착각이란 걸 안 건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술 만드는 방법부터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집을 관리하고 있던 분에게 술제조를 배우고 오래된 양조장을 찾아다니며 하나하나 맛을 익혀갔다. 그렇게 5~6년을 보내고 나니 아주 조금 술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래도 시골에선 늘 이방인 신세였다. 이씨는 그때를 이렇게 말했다. "아내가 목도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그 인맥으로 그나마 버티고 버티는 시간이었다"고.


목도양조장에서 나오는 막걸리는 달지 않다. 합성감미료를 최소한으로 넣어 옛날 맛 그대로를 살려내고 있다. 막걸리 특유의 맛과 텁텁, 칼칼, 쓴맛, 신맛이 잘 어울리는 막걸리다. 어린 시절 논두렁에서 홀짝이던 그런 막걸리가 부부가 말하는 막걸리다.


합성감미료를 확 줄이니 귀향 후 초기엔 술맛이 달라졌다고 주민들에게 타박도 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고향을 지키는 '귀한 술'로 인정받고 있다.


이씨는 "요즘 사람들은 단맛에 길들어 있어 바꾸기 쉽지 않지만 우리 막걸리를 한 번 마셔보면 단맛이 빠지고 난 막걸리의 근본을 느낄 수 있다"고 자랑한다.


막걸리는 발효주다. 재료는 쌀이나 밀, 찹쌀 등이다. 술항아리에 고두밥을 넣고 전통적 방식으로 막걸리를 만들어도 늘 그 맛을 예측할 수 없다. 그만큼 막걸리는 열린 술이다. 어떤 인공적인 감미료나 인위적인 보탬을 하면 안되는 것이 그 이유다. 자연이 만들어주는 그대로 막걸리가 발효되길 기다리는 것이다.


한때 목도양조장 주변은 가장 번화했던 곳이었다. 지금은 목도양조장의 역사관으로 쓰고 있는 창고는 일종의 판매장 역할을 했다. 매일 1t이 넘는 막걸리가 팔려나갔고 술을 사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섰다. 술안주로 고소한 빈대떡이 노릇하게 부쳐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호황을 누렸던 양조장도 1990년이 되면서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다. 목도시장도 문을 닫았다. 그렇게 양조장은 맥이 끊겼다.


부부가 다시 양조장을 열면서 먼저 한 일은 양조장을 개방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들어와서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허물어져가고 오래된 건물과 술항아리, 그리고 자료들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다. 쌀을 찌고 누룩과 주모를 만들며 술을 빚었던 방과 마당, 사랑채, 골방 등 발길 닿는 곳마다 이야기가 넘쳐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최근 3대가 목도 고향마을을 왔다가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아들과 손자가 양조장을 찾아왔다. "60년 만에 찾은 고향인데 예전과 똑같은 곳에서 옛 모습 그대로 양조장이 있어 너무 놀랐다"며 "그동안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보존해줘서 감사하고 고맙다"고 감격해했다.


이씨는 "방문한 사람들마다 어떻게 보존하고 있느냐고 놀라지만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것만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힘"이라고 말한다.


부부는 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전통방식 그대로 먹걸리와 맑은술을 만든다. 이씨는 "수작업을 하다 보니 너무 많은 양을 만들 수도 없다. 일주일에 막걸리는 150병, 맑은술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우리 부부가 소화할 수 있는 양이 그 정도다"라고 했다.


목도양조장에서 나오는 술은 4종류다. 약주 1종류와 탁주 3종류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이지만 올 초에 약주도 출시했다. 이름은 '느티'다. 무감미로 만든 술을 출시한 게 지난해였고 이번엔 약주까지 내놨다. 작은 개인 양조장에서 무감미 약주를 만드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다른 대형 양조장에서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일이란다.


하지만 양조장을 열심히 운영한다고 수익으로 환산되지는 않는다. 양조장으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실상은 양조장 때문에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부부는 양조장을 지키기 위해 돈 쓰는 일을 또 만들었다. 바로 공유다. 비즈니스를 위한 양조장이 아니라 역사의 시간, 건축 유형의 장소, 사람과의 교류 등 시간을 아우르는 가치 있는 공유 말이다.


그래서 부부는 돈을 버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목도양조장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목표다. 내가 즐기기 위해서 술도 빚고 역사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양조장에는 역사와 전통이 녹아져 있다. 건축과 문화 외에도 양조장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주조에 대한 철학, 지역민과 함께 한다는 원칙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양조장을 통해 사람들이 드나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술을 만드는 사람의 철학과 고집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로 이어지고 제품의 품격을 높인다.


양조장을 나서는 길, 뒤돌아 다시 한번 양조장을 바라본다. 낡은 단층 건물에 미닫이 격자 창문 그 위로 예스럽게 써내려간 목도양조장 간판과 항아리들, 그리고 문앞에는 막걸리만큼 진하고 오래된 삶의 향기를 품고 있는 부부가 서 있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잘 가라며 손을 흔든다. 술이 익어가는 100년 양조장, 그곳에서 세월의 추억과 역사를 만들고 있는 부부, 그렇게 세상은 무르익어간다.


괴산=글·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


◇여행메모

△가는 길= 수도권에서 가면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충주 방면으로 가다 괴산IC에서 괴산,수안보 방면으로 나와 구월리, 감물로 방면으로 가면 양조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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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산막이 옛길, 양반길, 문광저수지(사진), 연하협구름다리, 갈은구곡, 화양구곡, 이화령, 수옥폭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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