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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고립24시]컨트롤타워 없고 지자체 조례만 213개 '중구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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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국 정책 3無의 한계
①1無: 통일할 컨트롤타워 없어
지자체 조례 기준 중구난방
부처별 연계도 엇박자
민·관 연계할 방안 찾아야

한국에는 고립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통합형 컨트롤타워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립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선진국과 다른 점이다. 정부가 고립·은둔 위기 청년 지원을 위해 지난해 말 관련 지원 방안을 발표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책을 포함해 각종 정책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지고 있지만, 부처별 연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정책 적용에 '엇박자'가 발생하고 있다. 실효성 있는 정책 완성을 위한 피드백 수집도 제대로 되지 않아 청년들이 정부의 지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자체 조례만 164건…지역별 정책 중구난방

컨트롤타워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는 고립·은둔 청년과 관련된 지자체 조례 건수다. 자치법규정보시스템에서 ‘고립 청년’을 키워드로 한 조례는 134건이며, 여기에 ‘은둔 청년’ 조례 30건, ‘은둔형 외톨이’ 조례 49건을 더하면 총 213건으로 집계된다. 정부가 지난해 고립 문제 개입을 선언하기 이전,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대책을 마련해 시행했다는 의미다. 광주광역시는 2019년 전국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 지자체 조례 제정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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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고립·은둔 청년 관련 정책은 지휘체계 없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 조례를 살펴보면 지자체 사정에 맞춰 각기 다른 기준과 내용을 담고 있다. 청년을 규정하는 기준도 지자체별로 다르다.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는 고립·은둔 청년의 기준을 만 19~34세를 택한 반면 경기도는 만 19~39세로 청년의 범위를 더 넓게 잡았다.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정의도 제각각이다. 서울시 도봉구의 경우 이들을 ‘6개월 이상 정서적 또는 물리적 고립상태에 놓였거나, 본인의 방이나 집 등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해 타인 및 사회와의 교류가 거의 없는 청년’으로 규정했다. 은둔 기간과 물리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반면 대다수는 '사회적·심리적 요인으로 가족과 제한적인 관계만 맺고 생활하는 사람' 등으로 이를 뭉뚱그려 정의했다.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지원책을 아예 고독사나 사회적 고립가구 지원 아래에 같이 묶어놓은 지역도 있었다.

이렇다 보니 지자체 간 정보 교류나 정부 차원의 실태 파악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각 지자체는 고립 대책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모범사례로 꼽히는 서울시에 문의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경기도나 인천광역시 등 올해 사업을 준비하는 곳들이 서울시가 어떻게 진행했는지 노하우 등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다”며 “경기도 거주민들이 전담 기관이 없다고 서울시에 문의를 해 서울시가 대신 안내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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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별 연계 필요하지만…시작부터 엇박자

지자체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별 연계도 잘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동안 고립·은둔 청년 대책은 복지부가 진행해왔다. 고립·은둔 청년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자 정부는 지난해 12월 복지부를 비롯해 고용노동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별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청년의 고립·은둔 문제가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만큼 부처 간 정책 연계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정부 부처 간에도 이같은 연결고리가 활성화되지 못한 부분들이 드러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복지부가 고립·은둔 청년 지원을 위해 올해 광역 지자체 4곳에 건립하겠다고 발표한 청년미래센터 사업이다. 온라인 자기진단, 자기 이해, 가족 자조 모임 등을 통해 고립·은둔 청년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 뒤, 고용노동부 일자리 정책과 연계해 이들을 사회에 나가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가 연계하겠다는 고용노동부의 정책에서는 고립·은둔 청년의 특성에 대한 고려가 드러나지 않는다. 청년성장프로젝트의 경우 정책 대상자를 ‘미취업 청년’이라고 발표해 기존 사업인 청년 도전 지원사업, 국민취업지원제도, 국민 내일배움카드 등과 연계하는 것에 그쳤다. 사실상 자조 모임이나 심리상담을 끼워 넣고 나머지는 기존 청년 취업 정책을 대부분 답습한 형태다. 고립·은둔 청년을 고려한 정책은 이들의 취업 후 정착을 지원하는 ‘온 보딩 프로그램’ 뿐이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진행 방향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심지어 고용노동부의 이 기존 정책들은 일 경험 사업이라기보다는 대부분 단기 일자리에 그쳐 고립·은둔 청년이 업무 현장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재고립에 다시 빠지는 원인이 된다고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사실상 복지부의 원인 파악과 고용부와의 상황 공유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예방이 가능했을 일이다.

지자체 연계부터…고립 정책 전 단계 관리할 컨트롤타워 필요

전문가들은 결국 전방위적으로 이를 관리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중구난방인 지자체 사업을 일괄 통일하고, 일상 고립부터 은둔이나 고독사 등을 총체적으로 관리할 중앙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심리상담학과 교수는 전국적인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기관, 지자체 등 컨트롤타워 없이 대책이 난립하고 있다. 올림픽을 내보내야 하는데 후보군도 하나도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라며 “당장 지자체에서 내놓는 연구도 통일된 것이 하나도 없다. 광역시부터 시작해 작게는 구 단위까지 고립·은둔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기준점도 다르고 연령대도 다르고 연구에 필요한 집단 모집 방법도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를 고려해 현장 경험이 많은 민간과 어떻게 시너지를 쓸 수 있을지도 고민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정부가 개입을 선언하기 훨씬 이전부터 여러 활동가가 사회적 기업이나 사단법인 등의 형태로 이 문제를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부 실태조사에 앞서 이미 많은 연구를 수행해왔고, 고립·은둔 청년을 현장에서 대면하고 지원한 사례도 많다. 이들의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키울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지원을 늘려 기틀을 갖추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견이다.


고립·은둔 청년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 ‘안무서운 회사’의 유승규 대표는 “일단 예산이 적절한 곳에 쓰이고 있는지 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만들어져야 하고, 어떤 인력을 양성할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이다. 행정작업만 하다가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이어 “결국 (사회적 기업 등) 민간 위탁의 방식을 유지하게 될 것인데, 사업을 잘하는 업체를 키워주는 등 보조금을 어디에 효과적으로 써야 하는지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장기적으로는 심각한 수준의 고립이나 은둔뿐만 아니라 일상 고립 등에 전반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취약성이 악화된 상태를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을 하자는 차원에서다. 이미 일본이나 영국 등 해외에서는 은둔형 외톨이와 같이 가시적으로 보이는 고립의 형태에 주목하는 것을 넘어 일상 고립 방지를 위한 시민 교육 사업들이 시행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일단 전체적인 제도를 총괄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국무조정실에서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자리의 경우 고용노동부, 마음 건강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는 등 구체적인 정책 수단은 나눠져 있다고 덧붙였다. 국조실은 먼저 올해 시범사업을 통해 실태를 파악한 뒤 이후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국조실 관계자는 “일단 올해 지자체 4곳에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센터를 만드는 것은 시범사업이기 때문에, 시행 이후 부족한 점을 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다”며 “아직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개선점이 필요한지를 현재 단계에서 한 번에 다 알기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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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고립의 이유와 사회적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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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국의 정책 3無의 한계
① 컨트롤타워 없고 지자체 조례만 213개 '중구난방'
② 54만 고립·은둔 청년을 32명으로 해결?…예산·인력·연구 태부족
③ 일본 따라하기의 씁쓸한 결말…한국형 정책 호소하는 청년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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