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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우먼톡]1793년에 태어난 여성 '유학자' 사주당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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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생활 속에서도 학문 계속
태교법 기술한 '태교신기' 펴내

[K우먼톡]1793년에 태어난 여성 '유학자' 사주당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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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화가와 여성 시인. 여성의 역사를 더듬을 때 그나마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여성 유학자라는 말은 어떤가. 여성의 관심사가 그저 예술에 국한되었을 리 없다. 그렇기에 여성 유학자인 사주당(師朱堂) 이씨의 기록이 남은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사주당 이씨는 조선 후기인 1793년 청주에서 7명의 형제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제 많은 집의 막내라면 사랑받고 철없이 자랐을 것 같지만, 사주당 이씨는 전혀 달랐다. 사주당은 그녀 스스로 지은 이름이었으니, 바로 주자를 스승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다른 여성들이 여자 위인들을 롤모델로 삼은 것과 달리, 사주당은 성리학의 가장 큰 스승인 주희를 골랐으니 그만큼 포부가 남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사주당 이씨는 여러 장애물을 만나야 했다. 가장 먼저는 여성이라는 성별이었다. 이 때문에 오빠들처럼 공부를 하는 대신, 바느질이나 베짜기같은 여공을 익혀야 했다. 다행히 사주당 이씨의 아버지 이창식(李昌植)은 공부하고 싶다는 딸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15살 즈음의 사주당은 친척 남자들 중 누구보다도 뛰어난 학식을 가지게 된다.


그다음의 장애물은 결혼이었다. 옛날에는 결혼을 하지 않은 이상 성인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하지만 사주당 이씨는 가난한 살림과 아버지의 3년상 때문에, 25세라는 당시 기준으로 대단히 늦은 나이에, 20살이나 많은 유한규(柳漢奎)와 결혼했다. 유한규에게는 이것이 4번째 결혼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출산 시 여성 사망률이 높아 재혼이 흔한 일이긴 했지만 3혼부터는 기피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 좋은 혼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장애물은 남편과의 사별 이후 찾아온 경제난이었다. 아직 어린 자식이 넷이나 있었기에, 생계를 위해 처절한 가난에 시달리며 농사를 짓고 길쌈을 해야 했다. 유학자를 꿈꿨던 사주당에게는 정말 고통스러운 현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성실함과 유능함으로 이를 해결했으니, 바로 이식(利殖)을 통해서였다. 주변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은 따로 사회적인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양반 부인들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그렇기에 사주당 이씨의 삶은 남들이 보기엔 평안해 보였을 것이다. 결혼도 하고 재산도 불리고 자식들도 잘 키워냈으니까. 하지만 학문의 열정은 사주당 이씨의 마음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있었다.


고된 생활 속에서도 사주당 이씨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마침내 ‘태교신기’를 지었다. 제목 그대로 태교, 배 속의 아이를 가르치는 방법을 기술한 책이지만, 이제까지 그녀가 공부했던 경서와 사서, 의서에서의 태교와 관련된 내용들을 모두 정리했고, 여기에 아이를 직접 품어보고 낳은 자신의 경험 및 지식까지 포함한 책이었다. 어떤 교육도 태교보다 못하다! 라는 말은 오로지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일에게의 자부심도 담겨 있는 듯하다.


83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사주당 이씨는 태교신기를 제외한 자신의 글들을 불태우게 했다. 왜일까? 사주당 이씨는 자기 생각이 조선이라는 케케묵은 세상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게 아닐까. 수백 년이 흐른 뒤 여성도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이 찾아올 줄 알았다면, 사주당 이씨는 자신의 글을 남겼을까? 아니면 ‘아직 부족하다’라고 했을까?


이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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