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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금융사]유럽의 전쟁과 월스트리트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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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세계 1차 대전 시작
세계 증시 급락·金 시세 폭등
월스트리트, 세계 금융 수도로 성장
유럽자본 소유 亞·남미기업들 급매물로…美 자본이 차지

[세계금융사]유럽의 전쟁과 월스트리트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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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어찌 보면 소모전이기만 한 전쟁이 왜 계속되는 것일까? 100여년 전 영국의 경제학자 노먼 에인절은 그의 책 ‘거대한 환상’에서 전쟁은 이미 채산성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국가 간 서로 얽힌 경제의존이 유럽의 평화와 풍요의 터전이기 때문에 아무도 전면전의 파국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현대의 국가들은 재정적,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하고 있어서 잃을 것이 많은 전쟁은 이미 채산성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인간은 어리석고, 전쟁은 때로 채산성이 있다. 19세기 유럽의 강대국들은 식민지를 확장해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유럽은 서로 경쟁하고 전쟁을 벌였다. 늙은 유럽의 전쟁은 신생 산업국 미국에 기회가 됐다. 1912년 1차 발칸전쟁이 시작됐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전 세계 증시가 하락했다. 유럽 국가들의 사정이 점점 나빠지자 유럽 투자자들은 해외투자, 특히 미국 증권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고 자금을 회수해 금으로 교환해 보유하기 시작했다. 평상시 같으면 미국 곡물 수출의 증가로 유럽의 대규모 금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시기였던 1912년 8월에서 12월까지 4개월 동안 미국으로의 금 유입량은 3700달러에 불과했다. 그런데 1913년 상반기 미국의 금 유출량은 무려 6300만달러에 달했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저격 사건이 있었지만, 금융계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팽팽한 긴장이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 7월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다. 1차 대전이 시작됐다. 전 세계 증시가 급락했으며, 금 시세가 폭등해 세계 주요 증시가 거래를 중단하고 휴장을 선언했다. 그 와중에도 월스트리트는 세계 금융의 수도로 성장해 간다. 개전 초기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금은 안정된 도피처를 찾아 미국으로 되돌아왔다. 이때 유입된 금은 뉴욕연방준비은행 지하 금고에 지금까지 보관돼 있다고 한다. 애초에 유럽이 전쟁물자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 증권을 모두 처분하게 되면, 미국증시가 붕괴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뉴욕 길거리에 주식 암시장이 개설되고 현금거래가 시작됐다. 시장의 힘을 이기지 못한 뉴욕증권거래소는 다시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또한 농산물 수출이 급감해 미국산업의 근간인 농업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실제 개전 초기 미국의 대외 무역은 극심한 타격을 받았다. 독일이 개전 직후 곡물 한 톨도 수입하지 않았고, 면화 수출도 막혀 버렸다. 윌슨 대통령은 면화 농장의 파산을 막기 위한 다각적인 대책을 수립해야만 했다. 그런데 영국 해군이 북대서양의 재해권을 장악하자 상황은 급반전했다. 미국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회복됐다. 전쟁과 날씨 때문에 유럽의 농작물 작황이 최악이었다. 게다가 지루한 참호전에서 사상자가 늘면서, 대부분의 농민이 전쟁에 징발되는 바람에 다 자란 농작물도 수확할 손이 모자랐다. 최대 밀수출국이었던 러시아는 독일이 발트해와 흑해 입구를 봉쇄하자 곡물을 수출하지 못했던 것도 미 농산물 수요 회복에 도움이 됐다. 실제 1914~1915년 사이 미국은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5배 이상 수출할 수 있었다. 유럽 자본이 소유하고 있던 아시아와 남미 기업들이 전쟁이 발발하자 급매물로 나와 미국 자본이 저렴한 가격으로 차지할 수 있었다.


미국 자본은 이 시설을 이용해 철강재, 자동차, 통신수단, 철도 장비, 전함 등을 생산해 산업시설이 붕괴한 유럽에 팔아 한몫을 챙긴다. 남북전쟁 이후 최대의 전쟁 특수였다. 전함을 만든 베들레헴 철강이나 화약을 제조한 듀폰 등이 전쟁 특수를 누린 대표적 사례다. 베들레헴철강은 영국해군으로부터 함포와 잠수함 등 1억달러가 넘는 주문을 받았고, 듀폰은 1차대전 중 연합국 군수물자의 40%를 제조해 종합화학회사로 발전할 수 있었다. 듀폰은 전쟁 전 군납실적보다 무려 276배 많은 전쟁물자 생산을 주문받았고, 전쟁 전 연간 매출액보다 26배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다른 기업들도 이들보다는 못하지만 전쟁 특수로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 JP 모건은행은 영국을 위해 전쟁 기간에 30억달러에 달하는 조달계약을 맺었다. 이는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기 1년 전인 1916년 연방정부의 세수를 4배 이상 초과하는 대형 계약이었다. 모건은행은 주문 액수의 1%를 수수료로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조달계약을 위해 175명의 직원이 미국 전역을 돌며 물자계약, 선전, 보험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국기업들은 모건은행의 지휘 아래 재배열됐다. 곧 군산복합체로 산업을 재편한 것이다. 이렇게 구축된 미국 군수산업 규모는 1차대전 말 당시 영국과 프랑스를 합친 것보다도 컸다. 이뿐만 아니라 월스트리트는 연합국이 전쟁물자를 도입하도록 15억달러의 차관도 제공한다. 모건은행은 금융회사를 끌어들여 신디케이트를 구성해, 영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인수해 판매한다. 1917년 미국이 참전한 후, 연방정부도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월스트리트에서 조달해야만 했다.


다만 연방정부가 전비를 마련하는 방법은 남북전쟁 당시 제이 쿡이 활용했던 방법인 일반투자자를 상대로 연방정부 채권을 발행해 마케팅하는 것이었다. 미국정부채권, 이른바 T-본드의 시장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1차대전이 끝나자 미국이 진정한 승리자로 드러났다. 미국은 강대국을 넘어 초강대국으로 발전했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100억달러 넘는 빚에 허덕여야 했다.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은 현재 산업화된 미국을 창조했다. 그들은 19세기에 촘촘한 철도 인프라를 만들었다. 또한 제너럴일렉트릭, 인터내셔널 하베스터 같은 기업들의 기업공개가 이루어졌고,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카네기제철의 회장 찰스 슈와브는 서른다섯 살의 나이에 카네기 체절의 회장으로 지명됐다. 그는 도전적이며 공격적이었다. 오로지 능력만으로 성공하는 미국적인 신화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월스트리트의 1920년대는 거대한 폭발 사고로 시작됐다는 점이다. 1920년 9월16일 마차 한 대가 JP모건 은행 옆 월스트리트를 질주한 뒤 폭발했다. 10명이 사망하고, 130명이 부상했다. 이 폭탄테러의 전단에는 ‘미국무정부주의 전사’라는 서명이 있었다.


백영란 역사저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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