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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미안 샤워기 만들다가 어르신 손잡이 제작하는 이유[인생3막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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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식 세비앙(CEBIEN) 대표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히는 'iF', '레드닷', 'IDEA'. 욕실업계에서 이 세 가지 상을 모두 탄 회사가 있다. 바로 욕실전문업체 '세비앙(CEBIEN)'이다. 30여년 전 출범한 세비앙은 샤워기 등 욕실제품에 디자인 개념이 없던 시절 예술적 감성을 입혀 소비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고, 아파트 브랜드 래미안과 자이에 자사 제품을 납품하는 결과를 냈다.


'욕실'이라는 한 우물만 파던 세비앙은 2012년부터 실내 안전손잡이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고령화 현실을 반영한 사업 아이템으로, 실내에서 생길 수 있는 낙상 사고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수호천사’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만들어 부착형·거치형·기둥형 안전손잡이를 개발해왔다. 현재 세비앙에서 만든 약 20개의 손잡이 제품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복지용구 급여제품으로도 등록돼있다.

2004년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디자인글로벌경영자 과정’ 워크숍에 참석해, 유럽에서 선진 기업 견학을 하며 우연히 욕실에서 새로운 디자인의 안전손잡이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는 류인식 대표이사(65)를 지난 12일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본사 쇼룸에서 만났다. 그는 "'어떻게 하면 안전손잡이를 흉물스럽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가 최대의 고민"이었다며 "일반 가정 인테리어에 조화될 수 있도록, 원목 소재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방문한 본사에는 세비앙의 대표 욕실 제품들과 함께 안전손잡이들이 전시돼있었다. 입구에서 손을 씻을 수 있는 세면대에는 일반수와 살균수 기능이 결합된 물 나오는 수전이 달려있었다. 전기분해 방식을 통해 수돗물을 차아염소산수(살균수)로 바꾸는 전해살균시스템을 적용했다고 한다. 안쪽에는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 좁은 집에 설치할 수 있는 콤팩트 욕실인 '유닛바스' 전시 공간이 마련돼있었다. 세비앙이 창업 초기부터 개발해 전문성을 키운 각종 바디샤워기는 덤.

12일 류인식 세비앙 대표이사가 경기도 광주시 본사에 전시된 세비앙 안전손잡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박유진 기자

12일 류인식 세비앙 대표이사가 경기도 광주시 본사에 전시된 세비앙 안전손잡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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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업계에서 창업한 이유가 궁금하다. 창업 전에는 뭘 했는지.

▲1980년대에 욕실 제품 전문 회사인 '대림통상'에 입사해서 7년을 다녔다. 영업팀에서 건설업체 출입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나도 사업을 해보고 싶더라. 그래서 대책 없이 34살에 창업했다. 1990년대 초반에 창업해서 데스밸리(창업 초반 수익 창출 전 자금·자원 부족으로 위기를 겪는 시기)도 지나 봤고, 외환위기도 겪었다.


-스타트업으로서 외환위기를 견디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지만 바닥까지 내려온 덕분에 다시 딛고 올라갈 수 있어 좋았다. 일하느라 바빠 오랜 기간 잊고 지냈던 책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다 다행히 그 시절 삼성물산(당시 삼성종합건설)의 아파트 브랜드 '래미안'이 론칭됐는데, 차별화된 아이템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가 개발한 바디샤워기가 뽑혔다. 당시 욕실업계에는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때라 디자인 차별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때 본 물량을 납품하면서 회사를 더 키울 수 있었다.

-욕실업계에서 쭉 일했는데, 실내 안전손잡이를 개발하게 된 이유는 뭔가.

▲2004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주관하는 해외 연수를 갔을 때다. 이탈리아에 있는 호텔에 묵었던 날, 호텔 욕실에 들어갔더니 파이프 두 개가 욕실 내부에 둘러져 있더라. 욕실을 돌면서 잡을 수 있는 형태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서 손잡이는 기능적인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욕실에서 내가 본 손잡이는 욕실 분위기에 잘 스며드는 디자인으로 제작됐다. 그때 '손잡이도 예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를 얻어맞는 듯했다. 당시 한국의 감성, 경제력, 디자인 감각 등은 이탈리아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수입도 푸대접받으면서 해올 때다. 결국 그때의 경험이 나에게 '상상의 뚜껑'을 열어준 셈이다. 그때 꼭 이런 손잡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직접 개발해 시장에 내놓기까지는 오래 걸린 것 같다.

▲다시 돌아와서 다른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몇 년 후 나이 든 어머님 댁에 황토방을 하나 만들어드리면서 욕실을 고쳐드렸다. 욕실에 설치할 안전손잡이를 사려고 했더니 그 당시에 2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거 말고는 너무 대중적이고 기능적이기만 한 저렴한 손잡이가 대부분이었다. 그 중간이 없더라. 그때 다시 결심하고 연구에 들어갔고, 2012년에 론칭했다. 그때 칭찬을 많이 받았다.


-안전손잡이에도 디자인 철학을 담은 건가.

▲어떤 제품에 대한 디자인이 고정되면 그 디자인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노인용·의료용 손잡이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환자들이 잡는 손잡이'라는 이미지와는 차별화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원목 소재를 도입한 거다. 집 안의 오브제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상생활 용품처럼 예술과 무관한 물건이지만, 인테리어적 감성이 담겨있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아름답게' 만드는 물건 말이다.


-어떤 점이 디자인적으로 다른 건가. 좀 더 설명해달라.

▲원목 손잡이의 경우 단단하고 강한 100% 천연 원목만을 사용했다. 인체공학적인 안전 각도로 만들어 미끄럽지 않고, 살짝만 잡아도 매달릴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원목인 만큼 실내 온도 변화에 따라 차갑거나 뜨겁지 않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어두울 때는 손잡이에 둘러 있는 야광띠를 통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또, 볼트가 보이지 않도록 설계해 깔끔한 인상을 준다.


지난해에는 모듈형 컬러 안전손잡이 CP시리즈(Comfortable & Powerful) 제품으로 '2023 대한민국 굿디자인 어워드' 은상을 수상했다. 이 제품은 원목 베이스는 아니고, 부드러운 색의 친환경 실리콘을 적용해 차가운 이미지를 없앴다.


-아직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적용받는 복지용구 시장에 주력하고 있는 것 같은데, 민간 시장 진출도 계획하고 있는지. 수요가 있을 거라고 보나.

▲내년부터 민수시장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첫해 연 50억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회가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어르신들의 자녀들도 늙고 있다. 이러한 제품의 필요성은 직접 늙어봐야, 아파봐야 알 수 있다. 자식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낙상사고 등 부모님이 집안에서도 겪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해 공감하고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기능적으로도 탁월하고, 디자인적으로도 예쁜 안전손잡이를 많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남을 따라하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우리만의 디자인을 만들어서 우리 시대가 원하는 그 라이프 스타일을 잘 해석해 반영한 제품을 만들고 싶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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