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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힘주고 "읍, 읃, 윽, 음"…전화공포증 치료학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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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는 싫습니다, 카톡·문자로 하시죠"
MZ세대 전화공포증 호소…학원도 개설
학계 "테크닉보다 불안 이해·배려가 먼저"

편집자주솔직 당당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에겐 말 못 할 고민이 있다. 전화 공포증(Call Phobia). 카카오톡·텔레그램 등으로 비대면 메시지를 주고받는 데 익숙해져 목소리를 섞는 통화엔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를 말한다. 미국의 한 컨설팅 회사가 전화 통화에 어려움을 겪는 MZ세대를 대상으로 시간당 수십만원에 달하는 강의를 최근 개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메신저와 문자에 익숙해진 이들이 전화 통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국내 MZ들도 마찬가지다. 학원가에는 전화 공포증 치료 강의도 이미 개설된 상태다. 아시아경제는 '전화 공포증'을 고쳐준다는 학원을 찾아가 강의를 들어봤다. 학원에서는 "강의를 듣고 나면 충분히 전화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새해 직전인 12월 30일 오전 10시 43분, 해당 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배 힘주고 "읍, 읃, 윽, 음"…전화공포증 치료학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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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듣고 나면 전화 공포증 정말 사라질까요?"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강의료는 1회에 90분, 가격은 15만원이다. 7번의 과정을 등록할 경우 원래 가격인 105만원에서 70만원으로 할인된다고 한다. 1시간 단위로는 약 10만원인 셈이다. 해외의 전화 공포증 상담 비용이 시간당 60만원 정도라고 하던데, 거의 6분의 1 수준이다. 저렴한데 비싸다. 묘한 마음으로 강의를 등록했다. 수업 날짜는 1월 2일로 잡혔다.


강의실 칠판에 설명할 내용이 적혀있다./사진=김정완 기자 kjw106@

강의실 칠판에 설명할 내용이 적혀있다./사진=김정완 기자 kjw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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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월요일, 긴장된 마음으로 강의실 문을 열었다. 수업은 1대 1로 진행될 것이란 안내를 받았다. '2023년 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른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텅 빈 강의실이라 칠판에 적힌 문구가 눈에 띄었다. 곧이어 학원의 대표이자 강사인 사람이 들어왔다.

"언제부터 전화 통화에 두려움을 느꼈나요?"

질문과 함께 수업이 시작됐다. 강사는 전화 공포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무엇을 얘기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고 했다. 카톡과 디엠(DM·Direct Message) 등으로 소통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편해진 상황에서 즉흥적이고 갑작스러운 소통이 힘들어진 것이 공포증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강사는 이 같은 현상을 호소하며 학원을 찾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가 전한 대표적인 사례는 3가지다. 먼저, 전화 통화에 직접적인 트라우마가 있는 이들. 콜센터에 근무하던 한 남성은 업무 당시 받은 전화 통화 이후 두려움을 느껴 학원을 찾았다고 한다.


외국에 오래 살았거나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전화 공포증을 호소한다. 언어 격차에 괴리감을 느끼거나,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주제의 대화·통화를 회피하는 경우다. 약 1년 동안 수업을 받고 있다는 40대 여성은 외국에 살다 온 뒤 전화 통화를 피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MZ세대의 전화 공포증은 가장 최근에 생겨난 유형이다. 강사는 MZ세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소통하며 직접 말을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했다. 일방향적으로 영상을 시청하거나 메신저 등 시간을 두고 소통하는 것에 익숙해진 세대가 취업 시장 등 다면적 환경에 놓이면서 전화 통화를 비롯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설명이다.


"전화 통화도 스피치예요. 발성·소리부터 연습하시죠."

강사는 'PREP(Point·Reason·Example·Point, 요점·이유·예시·요점)'에 기반해 대화하는 방식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사진=김정완 기자 kjw106@

강사는 'PREP(Point·Reason·Example·Point, 요점·이유·예시·요점)'에 기반해 대화하는 방식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사진=김정완 기자 kjw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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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람은 교감과 소통을 하며 살아가야 하므로 전화에 대해 느끼는 공포감은 반드시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화 통화도 '스피치(Speech·말하는 일)'의 일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강사는 칠판을 가리켰다. '2023년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른의 모습을 그려본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해 아무 주제나 10분 동안 생각해본 뒤, 강단으로 나와 발표해보라고 했다.


발표에 대한 진단은 "소리가 안 들린다"는 것이었다. 말에 강약이 없기 때문에 소리가 없고 지루하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전화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선 '소리를 밖으로 빼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화로는 비언어적 요소들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목소리가 중요하며, 속으로 떨리더라도 소리를 크게 하면 상대방이 떠는지 모른다고 했다. 받침이 취약하거나 소리가 작아지면 떠는 것이 티가 나기 때문에 발음과 발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가, 갸, 거, 겨…. 읍, 읃, 윽, 음'"

강의실 구석에 있는 자음, 모음 판./사진=김정완 기자 kjw106@

강의실 구석에 있는 자음, 모음 판./사진=김정완 기자 kjw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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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의 기술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강의가 이어졌다. 그는 강의실 구석에 있던 자음, 모음 판을 가져와 발음을 확인했다. 기자는 '가, 갸, 거, 겨'부터 시작해 '후, 휴, 흐, 히'로 끝나는 자음, 모음 판을 읽었다. 말에 힘을 싣는 훈련이라면서 '읍, 읃, 윽, 음'도 세 번씩 반복해 읽도록 했다. 이중모음이 발음에 중요하다면서 '야, 와, 의, 여', '갸, 과, 긔, 겨', '냐, 놔, 늬, 녀'를 읽는 훈련도 이어졌다.


'말하는 법'에 대한 내용도 이어졌다. 말을 할 때는 'PREP(Point·Reason·Example·Point, 요점·이유·예시·요점)'의 순으로 말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강사는 이 같은 방법이 어렵다면 당분간 요점과 이유로 대화하는 방식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화할 때도 이런 방법을 활용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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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이후 세 가지 과제를 줬다.


먼저 주변인과의 접촉을 늘려가라는 것이다. 편하지 않은 관계로의 노출을 점점 늘려가다 보면, 관계가 익숙해지면서 전화 통화 역시 편해진다고 했다. 편한 사람과 짧은 전화 통화를 시작으로 대상과 시간을 점점 넓혀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과제는 평상시 일정과 습관 등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기상부터 식사, 전화 통화 횟수, 외출 여부, 만난 대상 등 일주일가량의 일정을 정리해보면 자신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읍, 읃, 윽, 음' 등 말에 힘을 싣는 훈련을 매일 3번씩 반복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호흡법이 개선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수업은 대부분 스피치의 기술적인 요소를 훈련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기술적인 요소가 향상되면 전화 통화 역시 쉬워질 것이라는 진단에서다.


전문가 "외적 요소 개선만큼 심리 문제와 배려 중요"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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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와 억양·발음 등 기술적·외적인 요소보다는 심리적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는 전문가 지적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전화 통화를 두려워하는 이들 중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이 심해서인 경우가 있는데, 이건 반드시 전화나 음성이 아니더라도 대면 소통이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발성이나 억양 같은 외적인 것으로는 한계가 있고, 편한 사람들을 통해 심리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곽 교수는 통화 상대방을 배려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문자가 익숙해 전화 통화를 피하는 경우도 많다"며 "통화할 시간이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개인적인 질문을 원치 않는 경우가 있는데, 나이가 많은 세대나 긴 통화 습관을 지닌 사람에게 전화가 올 경우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이런 피로감 때문에 용건만 간단히 얘기하고 원할 때 답할 수 있는 자기주도적인 성격의 문자 소통만 편하게 느끼는 것"이라며 "'네가 전화 공포증이다'라고 낙인찍고 문제라 여길 것이 아니라 전화 역시 상호적인 소통이라는 점을 명심해 피로감을 주는 행위는 고쳐야 한다"고 했다.


MZ 전화공포증은 만국공통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2020년 성인 남녀 5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3.1%가 '콜 포비아를 느낀다'고 답했다. 2년 차 직장인 신모씨(27)는 "전화 대신 카톡을 하는 것이 편해서 평소 전화가 와도 안 받고 카톡이나 문자로 대화한다"며 "직장 일 때문에 전화를 받아야 하는 일이 많아졌지만, 무슨 용무인지 파악한 뒤 시간을 두고 답할 수 있는 이메일 연락이 아직도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전화 기술 컨설팅 업체 '더 폰 레이디(The Phone Lady)'를 설립한 메리 제인 콥스는 16년 전 전화 공포증이라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이 같은 증상을 해결하기 위한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의 상담 서비스는 1대1로 이뤄지며 가격은 시간당 480달러(약 60만원), 온라인 세미나는 30분당 365달러(약 46만원) 정도다. '더 폰 레이디'의 주 고객은 금융권 기업과 스타트업으로, 기업 워크숍의 경우 하루 3500달러(약 443만원)의 비용이 든다.




김정완 기자 kjw1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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