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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원으로 시작한 라면 사업…세계 5위 기업 일군 신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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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력 강조, '한국의 맛' 세계에 알려
스스로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불러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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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혜선 기자] 27일 타계한 신춘호 농심 회장은 맨손으로 시작해 타고난 성실성에 뛰어난 투자 감각과 안목으로 '세계 5위' 라면 회사를 일군 입지 전적인 기업인이다. 신 회장은 평소 자신을 '라면쟁이'와 '스낵쟁이'라 불렀다.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한 라면 사업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은 1930년 12월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에서 태어났다. 부친 신진수 공과 모친 김필순 여사의 5남 5녀중 셋째 아들이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형제 사이다. 1954년 김낙양 여사와 결혼해 신현주( 농심 기획 부회장), 신동원( 농심 부회장), 신동윤(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메가마트 부회장), 신윤경(아모레퍼시픽 서경배회장 부인) 3남 2녀를 두었다.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형인 고(故)신격호 회장을 도와 제과사업을 시작했으나 1963년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했다. 신춘호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신 회장은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며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 회장은 35세가 되던 1965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라면 뽑는 기계를 들여놓고 라면 사업을 시작했다.



초창기 농심 대방공장

초창기 농심 대방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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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장인'의 기술력 강조, 한국의 지적재산을 남겼다

신 회장은 항상 기술력을 강조했다.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사실 라면 산업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면 제품 개발이 수월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농심 만의 특징을 담아낼 수도, 나아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신 회장은 회사 설립부터 연구 개발 부서를 따로 뒀다. 안성공장 설립 때에도 신 회장의 고집은 여실히 드러난다. 신 회장은 국물 맛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선진국의 관련 제조 설비를 검토하되, 한국적인 맛을 구현할 수 있도록 턴키 방식의 일괄 도입을 반대했다. 선진 설비지만 서양인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농심 이 축적해 온 노하우가 잘 구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주문한 것이다. 신 회장은 직원들에게 "맨 땅에서 시작하니 우리 기술진이 힘들겠지만, 우리 손으로 개발한 기술은 고스란히 우리의 지적 재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업 초반부터 위기가 시작됐다. 농심 은 1970년대 초 닭고기 육수 중심의 국내 라면 시장에서 주목 받지 못했다. 신 회장은 닭고기 대신 소고기 육수를 사용한 '소고기라면'으로 승부수를 던져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후 1982년 '너구리'와 '육개장 사발면', 1983년 '안성탕면', 1984년 '짜파게티' 등을 출시하며 시장점유율을 늘려갔다.

'매운 맛'으로 승부수 던진 사업가

1980년대 중반 신 회장은 매운 맛을 강조한 '신라면' 개발에 나섰다. 신 회장은 매운 맛에 대한 주변 우려에 "신라면의 독특한 매운 맛은 천편일률적인 라면시장에 차별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밀어붙였다. 그는 제품 개발부터 제품명, 포장 디자인까지 손수 챙겼다. 신라면은 출시 3개월 만에 3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1991년부터 국내시장을 석권하는 '국민 라면'으로 등극했다. 신 회장의 도전은 스낵으로 이어졌다. 그는 스낵시장에 뛰어들어 국내 최초 스낵 ‘새우깡’을 만들었다. ‘새우깡’의 성공에 이어 ‘양파깡’ ‘감자깡’ 등 히트 상품을 연달아 내놓으며 스낵 부문에서도 업계 1위에 올랐다. 농심 은 지난해 기준 매출 2조6390억원, 영업이익 1603억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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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명 직접 짓는 브랜드 전문가

신 회장은 브랜드 전문가로도 이름 높다.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 의 역대 히트작품은 신 회장이 직접 지었다. 신 회장의 대표작은 역시 신라면이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출시 당시에는 파격적인 이름이었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이 중심이었는데,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회장이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주목할 수 있으면서 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 중요하다며 임원들을 설득했다.


식품보국, '한국의 맛' 세계에 알리다

신 회장은 ‘식품보국’을 외치며 한국의 맛을 세계에 알렸다. 신 회장은 해외진출 초기부터 신라면의 세계화를 꿈꿨다. '한국시장에서 파는 신라면을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농심 은 1971년 소고기라면을 미국에 첫 수출하면서 해외 사업에서 발을 뗐다. 외국인 입맛에 맞도록 라면 맛을 바꿔보자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신 회장이 매운 맛을 고수했다. 그는 "한국의 맛이 가장 세계적인 맛이 될 것"이라며 끈질기게 임직원들을 설득했다. 이 같은 신 회장의 뚝심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신라면은 미국시장에서 일본라면보다 대부분 3~4배 비싸다. 월마트 등 미국 주요유통채널에서는 물론이고, 주요 정부시설에 라면최초로 입점되어 판매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농심 은 지난해 해외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전체 매출 대비 해외 비중도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신 회장은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가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선정했을 때,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신 회장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맛을 라면과 스낵으로 만들어냈다. 신 회장의 라면은 배고픔을 덜어주는 음식에서 개인의 기호가 반영된 간편식으로 진화했다. 국민들의 삶과 깊숙하게 연결되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신 회장의 농심 은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로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았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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