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택배 기사 유서엔…"비트코인 투자하면서 중고 에어컨 하나 안 사줘"

최종수정 2020.10.21 11:05 기사입력 2020.10.20 22:46

댓글쓰기

생활고 몰려 극단적 선택한 택배 노동자
공개된 유서에서 직장 내 갑질·열악한 근무환경 토로
올해 목숨 잃은 택배 노동자 11명
이들 가운데 10명은 과로사 추정

A 씨가 남긴 유서 일부. / 사진=전국택배노조

A 씨가 남긴 유서 일부. / 사진=전국택배노조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로 추정되는 사망 사고가 최근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생활고에 몰린 택배 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고인은 유서에서 직장 내 갑질, 열악한 근무환경, 적은 수입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20일 전국택배노동조합, 경남 진해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3시께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 터미널에서 A(50)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해당 지점 관리자는 이날 오전 고인의 시신을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앞서 A 씨는 이날 오전 2시30분께 자필로 작성한 3장 분량 유서를 촬영, 메신저를 통해 노조 조합원에게 전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가 작성한 유서에는 투자 부족으로 인한 열악한 근무환경, 수입이 적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호소, 직장 내 갑질 등에 대한 호소가 적혀 있었다.


유서에서 A 씨는 "이 일을 하기 위해 국가 시험, 차량 구입, 전용 보호판까지 (구했지만) 현실은 200만원도 못 번다"며 "신용이 떨어져, 저리 대출은 대환대출로 돌아가 생각도 안 한 원금과 이자 등 한달 120만원 추가 지출이 생겼다"고 생활고를 호소했다.

지난달 18일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택배기사들이 분류 작업을 마친 뒤 배송 준비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18일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택배기사들이 분류 작업을 마친 뒤 배송 준비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호소도 있었다. A 씨는 "한여름 더위에 하차 작업은 사람을 과로사하게 만드는 것을 알면서도, 150만원이면 사는 중고 이동식 에어컨도 사주지 않으면서 20여명을 30분 일찍 나오게 했다", "비트코인 채굴기 투자할 돈은 있으면서 지점에 투자하라면 돈 없다는 이유만 대고 있는 상황"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직장 내 갑질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그는 "부지점장은 화나는 일이 생겼다며 하차 작업 자체를 끊고 소장을 불러 의자에 앉으라며 자기가 먹던 종이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화를 냈다"며 "그때 소장을 직원 이하로 보고 있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한편 A 씨 죽음으로 올해 목숨을 잃은 택배기사는 11명이 됐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A 씨를 제외한 10명은 과로사로 추정된다.


지난 8일에는 CJ대한통운 소속으로 서울 강북구에서 택배 배송 업무를 수행하던 한 택배기사가 호흡 곤란을 호소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그는 매일 오전 6시30분에 출근해 오후 9~10시에 퇴근했으며, 일 평균 400여개 택배를 배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대기업 택배사 규탄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예방 호소하는 택배 소비자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대기업 택배사 규탄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예방 호소하는 택배 소비자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달 12일에는 한진택배에서 근무했던 김모(36) 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대책위에 따르면 김 씨는 숨지기 나흘 전인 8일 오전 4시28분께 동료에게 '집에 가면 5시인데 밥 먹고 씻고 바로 터미널 가면 한숨도 못 자고 또 분류작업을 해야 한다. 너무 힘들다'는 취지로 메시지를 보냈다.


다만 한진택배 측은 "김 씨는 평소 지병이 있었고 배송량도 200개 내외로 적은 편이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로 추정되는 사망사고가 잇달아 발생한 가운데, 정부는 주요 택배사를 대상으로 과로 예방 등을 위한 안전·보건 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긴급 점검하기로 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고용노동 위기대응 태스크포스(TF) 대책회의에서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등 주요 서브 터미널 40개소와 대리점 400개소를 대상으로 이달 21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과로 등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조치 긴급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고용부는 대리점 400개소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대리점과 계약한 택배기사 6000여명에 대한 면담조사도 실시할 방침이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