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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지소미아 이후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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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지소미아 이후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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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종료도 아니고 유지도 아니다. '종료 통보의 효력 정지'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으로 그간의 고심과 뒤이을 해법까지 담아낸 것이다. 게다가 GSOMIA 종료 시한 6시간 전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좀 더 냉정하게 보면 '봉합'이요, 미국의 완승이다. 미 국무부를 비롯한 고위층 인사들이 수시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전방위적 압박을 쏟아낸 결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이 처한 상황은 많이 다르다. 일본은 크게 잃는 것이 없어 보인다. 일단 GSOMIA가 유지됨으로써 외교적 부담은 극적으로 막아냈다. 한국 정부로부터 GSOMIA 이후의 공을 넘겨받기는 했지만 GSOMIA와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배제한 수출 규제가 별개라는 기존 입장은 그대로다. 대신 미국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낸 셈이다. 이를 통해 미국의 든든한 지원까지 더 얻어낼 수 있게 된 것은 오히려 '덤'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미국이 완승을 거두고 일본이 실익을 챙겼다면 한국은 무엇 하나 손에 넣은 것이 없다. 한국이 '일 보 후퇴'를 통해 앞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가 미지수라는 뜻이다. 일본이 수출 규제를 원점에서부터 재고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이 일본의 3개 품목 수출 규제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도 당분간 정지하기로 했지만 이에 일본이 전향적으로 화답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그렇다면 일본의 어떤 태도 변화도 확인하지 못한 채 우리가 당초 입장을 번복하고 막판에 손을 들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민적 자존감과 국격에도 큰 상처가 되고 말았다.


국내 상황으로 한 발 더 들어가 보자. 이 대목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얻은 성과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GSOMIA 문제가 더 큰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되는 일은 막았다. 그렇잖아도 총선을 앞둔 '막장의 정치판'에 GSOMIA 문제가 '한미동맹 붕괴론' '주한미군 철수론'까지 확산되던 상황이었다. GSOMIA 문제를 놓고 차분하고 냉철하게 국익과 외교 전략을 고민하는 단계는 아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자칫 또다시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져 길거리 싸움판을 벌일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뜬금없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GSOMIA 파기를 철회하라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간 상태였다. 어쩌면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은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황 대표와 한국당에 다시 물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한 발 후퇴하고 아베 정권에 유리한 결과가 됐으니 '좋으냐'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당의 바람이었으며 존재 가치냐고 말이다.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은 막판까지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정면대결이라도 했지만 당신들은 지금껏 어느 편이었냐고도 물어야 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무도함에 그저 져줄 수 없어서 '조건부'라도 달았지만 황 대표와 한국당은 집권당 시절 GSOMIA를 체결한 주역이 아닌가. 그래서 다시 묻는다. '트럼프'가 환하게 웃고 '아베'가 잔잔한 미소를 보이고 있으니 황 대표와 한국당도 행복한가.

그러나 오버하지 마시라. GSOMIA 태풍이 지나가면 황 대표와 한국당의 뿌리를 국민은 제대로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오만함과 일본의 무도함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지도 잘 살펴보기 바란다. 마침 21대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청와대 앞 단식농성이 결국 막다른 길임을 알게 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직시해야 한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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