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오후 한 詩]바람의 혀/박춘희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저렇게 날렵한 혀가 있다니, 서로 엉기고 협력하는 혀. 시끄럽지 않고 분주한 활기로 가득 찬 고요가 몸을 입고 보여 주는 것들. 바람이 꽃가지를 흔들고 가면 환하게 피어나는 혀. 햇솜 같은 구름과 팥알만 한 우박과 비와 얼굴에 번지는 잔잔한 저녁의 대기까지.

뼛속까지 차오르는 열기로 피는 혀가 있다.

바람의 온기가 보태져 혈관이 달아오르고, 캄캄한 눈은 동굴처럼 팽창한다.


객혈을 쏟아 내며 샐비어의 밤이 지나가고 있다. 고양이 발걸음으로 사라지는 흔적들, 연분홍 선명한 손자국들 우수수 빠져나간다. 문을 두드리는 저 날렵한 꽃잎들의 소란.

깔깔해지는 창 주위로 몰려드는 저 바람의 친화력. 가만히 젖는 뿌리들, 꽃이 피어나고 있다.

[오후 한 詩]바람의 혀/박춘희
AD
원본보기 아이콘

■이 시를 읽기 전까진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길을 가다 꽃을 보곤 왜 문득 멈추어 서곤 했었는지, 왜 한참이나 허리를 구부려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었는지 정녕 몰랐습니다. 다만 꽃이 예뻐서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꽃향기가 달콤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실은 저도 모르게 듣고 싶었던 겁니다. 꽃이 전하는 말을, 바람을 대신해 꽃이 들려주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겁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바람결에 묻힌 먼먼 당신의 소식이 들릴까 싶어서였습니다. 오늘도 괜히 깨꽃 앞을 서성이다 "가만히 젖는" 까닭입니다. 채상우 시인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국내이슈

  •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