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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바람의 혀/박춘희

최종수정 2019.05.31 09:07 기사입력 2019.05.3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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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날렵한 혀가 있다니, 서로 엉기고 협력하는 혀. 시끄럽지 않고 분주한 활기로 가득 찬 고요가 몸을 입고 보여 주는 것들. 바람이 꽃가지를 흔들고 가면 환하게 피어나는 혀. 햇솜 같은 구름과 팥알만 한 우박과 비와 얼굴에 번지는 잔잔한 저녁의 대기까지.

뼛속까지 차오르는 열기로 피는 혀가 있다.

바람의 온기가 보태져 혈관이 달아오르고, 캄캄한 눈은 동굴처럼 팽창한다.


객혈을 쏟아 내며 샐비어의 밤이 지나가고 있다. 고양이 발걸음으로 사라지는 흔적들, 연분홍 선명한 손자국들 우수수 빠져나간다. 문을 두드리는 저 날렵한 꽃잎들의 소란.

깔깔해지는 창 주위로 몰려드는 저 바람의 친화력. 가만히 젖는 뿌리들, 꽃이 피어나고 있다.


[오후 한 詩]바람의 혀/박춘희

■이 시를 읽기 전까진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길을 가다 꽃을 보곤 왜 문득 멈추어 서곤 했었는지, 왜 한참이나 허리를 구부려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었는지 정녕 몰랐습니다. 다만 꽃이 예뻐서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꽃향기가 달콤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실은 저도 모르게 듣고 싶었던 겁니다. 꽃이 전하는 말을, 바람을 대신해 꽃이 들려주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겁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바람결에 묻힌 먼먼 당신의 소식이 들릴까 싶어서였습니다. 오늘도 괜히 깨꽃 앞을 서성이다 "가만히 젖는" 까닭입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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