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은 여행에서 빠질 수 즐거움이다. 수증기가 모락모락 오르는 욕조 기호만 봐도 기분이 맑아진다. 예전에는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동네마다 목욕탕이 있었다. 시설은 대체로 단출했다. 온탕과 냉탕으로 나뉜 욕조. 운이 좋으면 사우나도 만날 수 있었다.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온수에 온몸을 담그면 기분이 몽롱해졌다. 목부터 다리까지 촛농 녹듯 나른해져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었다. 맞은편의 눈을 감은 할아버지 두어 명은 그런 쾌감을 다스리는 듯했다. 불상처럼 가부좌를 틀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모든 잡념을 버리고 마음에 평온을 되찾은 듯했다. 필자도 그들처럼 언제부턴가 온탕에 들어가면 눈을 감는다. 목욕이 일체의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시간이 됐다. 여행에서는 지친 심신을 달래고 여유까지 회복한다.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남은 일정을 보낼 힘을 얻는다. 일본행 비행기에 자주 올라타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현지인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여행만큼 좋은 경험은 없다. 유명 관광지나 휴양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다. 남자휴식위원회가 쓴 '느긋하게 홋카이도'는 이를 만끽할 수 있는 팁으로 가득한 책이다. 관광 책자에 빼놓지 않고 나오는 흔한 명소보다 낭만적인 일상의 풍경을 포착하는데 주력한다. 골목을 느긋하게 걸으며 도시와 시골의 숨은 매력을 들여다본다. 오래된 아파트에 모인 상점들과 헌책방, 산지 직거래 장터, 농장, 식당, 커피숍, 목욕탕 등이다. 많은 것을 경험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오로지 휴식에만 초점을 둔다. 잠시 머무를 숙소를 자기 방처럼 꾸미고, 전날 밤 동네 슈퍼에서 사온 재료로 아침 식탁을 차린다. 홋카이도 대학 학생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는가 하면, 골목의 작은 책방에 앉아 온종일 책을 읽는다. 특별하지 않아서 더 특별한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읽는 이의 가슴에도 작은 쉼표가 찍힌다. 내게는 목욕탕에 관한 서술이 그랬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영혼의 휴식을 취했다면, 몸을 이완시켜 주기 위해 목욕만큼 좋은 것도 없다. 목욕을 마치고 탈의실에서 차가운 우유를 마시는 동안 텔레비전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황금빛 석양이 불투명 유리창을 통해 스며들어오고, 공기 중에 목욕탕 특유의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남자휴식위원회는 다토, 이카이, 아요나로 구성된 대만의 창작집단이다. '삶이 곧 여행'이라는 모토 아래 휴일을 주제로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한다. 저서로는 이 책과 함께 발간된 '교토감성' 등이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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