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라는 명칭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기록에 보이는 서벌(徐伐)ㆍ서나벌(徐那伐)ㆍ서라벌(徐羅伐)ㆍ서야벌(徐耶伐) 등에서 비롯되어 변천된 것으로, 이러한 칭호는 신라 초기 도읍지의 지명인 동시에 국명이기도 했다. '삼국지' 등 중국 역사책에 보이는 사로(斯盧)ㆍ사라(斯羅)ㆍ신로(新盧) 등의 국명도 '서울'과 같은 음훈(音訓)으로, 서벌ㆍ서라벌 등의 다른 표기에 지나지 않는다. 서(徐)ㆍ서나(徐那)ㆍ서라(徐羅)는 높고[高] 신령(神靈)하다는 우리말 '수리' '솔' '솟'의 음사(音寫)이고, 벌(伐)은 들판을 의미하는 우리말 '벌'의 음사이다. 따라서 '서울', 즉 서벌ㆍ서나벌ㆍ서라벌은 상읍(上邑) 또는 수도(首都)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미군이 주둔한 뒤에도 서울의 공식 명칭은 여전히 경성부였다. 1946년 8월15일에야 경성부가 서울시로 바뀐다. 미군정 당국은 8월10일 서울시헌장을 발표했다. 경성부를 서울시(The City of Seoul)로 개칭한 다음 특별자유시(The Independent City of Seoul)로 했다. 9월18일에는 '서울특별시 설치' 법령이 공포되어 9월28일부터 시행됐다. 이날을 기해 서울시가 경기도 관할에서 독립해 특별시로 승격됐다.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가로명제정위원회'가 구성되고 서울 지명에서 왜색을 지우는 작업을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문동석, '서울이 품은 우리 역사')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조선의 궁궐들이 해체되거나 훼손됐다. 창경궁은 그런 면에서 상징적이다. 일제는 조선의 옛 궁궐을 부수고 일본식 건물을 짓는가하면 동물원을 들이고 길을 만들어 종묘와 창경궁을 단절했다. 한국전쟁은 그나마 남아 있는 서울의 모든 것을 파괴해버렸다. 국군은 1950년 6월25일 전쟁이 시작된 지 사흘 만에 서울을 잃고 낙동강 전선까지 쫓겼다. 국군과 연합군은 같은 해 9월28일에야 서울을 되찾고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9ㆍ28 서울수복일'로 배운 그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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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출신 변호사 "민희진이 배임죄? 오히려 방시...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