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무장독립투쟁을 이끈 최용덕 선생은 경술국치 이후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새로운 사상을 익혔고, 1916년 위안스카이가 설립한 중국 육군 군관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중국에서 3ㆍ1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선생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21년 의열단에 참여해 이듬해 김원봉 단장과 함께 김상옥 의사의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의거를 지원했다.
서울 수복 때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던 박정모 해병대령은 1946년 해군 1기다.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해병대 소대장으로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 1950년 9월 27일 서울 수복 작전 때 해병 제2대대 제6중대 1소대장이었던 박 대령은 소대원들과 함께 새벽에 중앙청 공격을 시도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중앙청 안으로 들어가 옥상에 걸려 있던 인공기를 끌어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이튿날 국군은 수도 서울을 완전히 되찾으며 전세를 뒤집었다. 당시 태극기 게양을 두고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세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공훈"이라는 요지의 표창장을 한국 해병대에 전달하기도 했다.
박 대령은 1951년 가리산지구 전투에서 해병대가 최종 목표인 957고지를 처음 탈환하는 데 주역이었다. 이어 도솔산지구 전투에서는 24개 목표 중 적의 최후 방어선인 9번째 목표를 7일 만에 탈환해 무적해병의 기개를 보여줬다. 정부는 6ㆍ25전쟁 중임에도 그의 전공을 기려 을지무공, 충무무공 훈장을 각각 수여했다. 박 대령은 2010년 5월 향년 85세로 타계해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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