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과작임을 늘 자책하며 반성과 정진을 거듭해왔다. 그렇기에 그가 세상에 내놓는 시집 한 권, 한 권이 지극한 사유와 천착의 결과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인 채상우는 이번 시집에 실린 작품을 일컬어 고졸(古拙)하며 또한 유려하다 했다. 이는 모순에 가까우나 시와 예술의 세계에서는 모순조차 합일에 이르는 예가 허다하다.
그 최고의 경지가 한없는 낮음을 얻어 우리 곁으로 온다. '직박구리의 봄노래'는 마법의 양탄자처럼 시인의 깨달음과 살아가는 일의 본질을 현실 속으로 실어 나른다. 그렇기에 홍신선의 시에는 삶의 지혜를 넘어 그 원점으로 향하는 이정표와 땀 냄새 밴 발자국이 자욱하다. 눈 밝은 독자는 육안으로 볼 것이요, 예민한 수용자는 가슴으로 체험할 것이다. 핍진함과 낭만이 빚는 긴장과 화해, 시적 쾌감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시인이 사는 곳은 충남 당진 순성면 양유리. 서울에서 100㎞ 정도 떨어진 곳이다. 야트막한 산 아래 앞이 탁 트인 곳에 집을 지었다. '와유(臥遊)의 즐거움'이 충만한 이곳에서 시인의 정진이 그치지 않은 것이다. 집앞에 금강송 묘목 열 그루를 심은 그는 새 시집에서 자연과 어울리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고백했다.
홍신선의 여러 제자 중에 하나일 채상우는 "선생님의 시를 두고 이런저런 말을 꿰어 맞추는 일은 아무래도 열 없는 짓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것은 마치 시삼백(詩三百)을 앞에다 놓고 '나부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지극히 삼간다. 그는 "'시경(詩經)'에 있는 시 300편에는 삿됨이 없다(詩三百一言以蔽之曰思無邪)"는 공자의 말씀을 빌렸으리라.
고졸하되 유려하며 텅비었으되 충만함은 무봉(無縫)함이니 곧 대교약졸, 진광불휘(大巧若拙, 眞光不煇)라! 우리는 이 세계를 일찍이 미당(未堂)의 안뜰에서 보지 않았는가. 가령 '소곡(小曲)'. "뭐라 하느냐/너무 앞에서/아! 미치게/짙푸른 하늘.//나 항상 나/배도 안 고파/발돋움하고/돌이 되는데." 이 세계에서 '내가 돌이 되면 돌은 연꽃이 되고 연꽃은 호수가 되고 호수는 연꽃이 되고 연꽃은 돌이 되고(서정주ㆍ'내가 돌이 되면')'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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