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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책과 저자]홍신선 새 시집 『직박구리의 봄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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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의 봄노래'는 홍신선 시인의 열 번째 신작 시집이다. 1944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1965년 월간 '시문학' 추천을 통해 등단했으니 시력(詩歷) 53년. 시집 열 권은 결코 많지 않으나 꾹꾹 눌러 짚은 대가의 흔적이니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과작임을 늘 자책하며 반성과 정진을 거듭해왔다. 그렇기에 그가 세상에 내놓는 시집 한 권, 한 권이 지극한 사유와 천착의 결과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인 채상우는 이번 시집에 실린 작품을 일컬어 고졸(古拙)하며 또한 유려하다 했다. 이는 모순에 가까우나 시와 예술의 세계에서는 모순조차 합일에 이르는 예가 허다하다.
채상우의 야무진 눈길은 홍신선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폐허'나 '공터'에서 충만함을 본다. '그 텅 빈 곳은 텅 빈 것 자체로 가득하니 비로소 기적이 행해지는 곳'이다. "무너진 축대 위 양귀비 붉은 꽃이 스스로 피었다 저절로 진다(24쪽ㆍ'늦깎이 공부')." 채상우는 감복한 나머지 "이 한 문장은 한국 시가 지금껏 내달려 도달하고자 했던 최고의 경지"라고 부르짖는다.

그 최고의 경지가 한없는 낮음을 얻어 우리 곁으로 온다. '직박구리의 봄노래'는 마법의 양탄자처럼 시인의 깨달음과 살아가는 일의 본질을 현실 속으로 실어 나른다. 그렇기에 홍신선의 시에는 삶의 지혜를 넘어 그 원점으로 향하는 이정표와 땀 냄새 밴 발자국이 자욱하다. 눈 밝은 독자는 육안으로 볼 것이요, 예민한 수용자는 가슴으로 체험할 것이다. 핍진함과 낭만이 빚는 긴장과 화해, 시적 쾌감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시인이 사는 곳은 충남 당진 순성면 양유리. 서울에서 100㎞ 정도 떨어진 곳이다. 야트막한 산 아래 앞이 탁 트인 곳에 집을 지었다. '와유(臥遊)의 즐거움'이 충만한 이곳에서 시인의 정진이 그치지 않은 것이다. 집앞에 금강송 묘목 열 그루를 심은 그는 새 시집에서 자연과 어울리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고백했다.
시인의 고뇌는 곧 꿈을 꾸는 일. 시집을 해설한 한용국은 "시인이 꿈꾸는 '놀이', 곧 '무위'의 밑자리는 어쩌면 모든 분별이 사라진 자리일 수 있다. 분별은 유위의 산물이다. 시인이 스스로 끝내 벗어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이 세계에서 끝내 벗겨져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분별이다. 분별이 사라질 때, 차별은 차이가 되지 않고 낙차는 격차가 되지 않는다"고 썼다.

홍신선의 여러 제자 중에 하나일 채상우는 "선생님의 시를 두고 이런저런 말을 꿰어 맞추는 일은 아무래도 열 없는 짓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것은 마치 시삼백(詩三百)을 앞에다 놓고 '나부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지극히 삼간다. 그는 "'시경(詩經)'에 있는 시 300편에는 삿됨이 없다(詩三百一言以蔽之曰思無邪)"는 공자의 말씀을 빌렸으리라.

고졸하되 유려하며 텅비었으되 충만함은 무봉(無縫)함이니 곧 대교약졸, 진광불휘(大巧若拙, 眞光不煇)라! 우리는 이 세계를 일찍이 미당(未堂)의 안뜰에서 보지 않았는가. 가령 '소곡(小曲)'. "뭐라 하느냐/너무 앞에서/아! 미치게/짙푸른 하늘.//나 항상 나/배도 안 고파/발돋움하고/돌이 되는데." 이 세계에서 '내가 돌이 되면 돌은 연꽃이 되고 연꽃은 호수가 되고 호수는 연꽃이 되고 연꽃은 돌이 되고(서정주ㆍ'내가 돌이 되면')' 마는 것이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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