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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온유의 느·낌·표] 타인을 안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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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온유의 느·낌·표] 타인을 안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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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이해한다'는 말을 내뱉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내가 너의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고서야, 아니 내가 네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일터가 있는 내가 취업 걱정에 잠 못 이루는 후배를 헤아릴 수 없고, 결혼도 하지 않은 내가 아이를 키우며 경력단절을 걱정하는 친구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당장의 기사 한 꼭지가 급한 일개 4년차 기자인 내가 1면을 고민하는 편집국장의 마음을 가질 수 없고, 특종이 고픈 내가 부정적 기사를 염려하는 홍보 담당자와 입장 바꿔 생각하기도 어렵다. 주말에 잠시 고향집을 들른 내가 딸을 배웅하며 '벌써 보고 싶다' 울먹이는 엄마의 마음을 모두 이해하기 어렵듯이 말이다. 처음부터 '이해한다'는 말이 어렵진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렇게 돼버렸다. 살아갈수록 더욱 그렇다.

새 책 '타인을 안다는 착각'은 애초에 타인은 '알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저자인 일본 뇌과학자 요로 다케시의 말이다. "사람의 뇌는 무의식이라는 의미 없는 부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의식 같은 건 빙산의 일각입니다. (중략) 의식의 가장 위에 드러난 꼭대기 부분만 가지고 왈가왈부하니까 그 아래에 감춰진, 전제가 되는 부분은 서로 모르는 거예요. 그런데도 윗부분만 보고서 '통할 것이다'라고 쉽게 생각해버리지요."

결국 우리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누구로부터 이해받을 수 없다는 것. 또 다른 저자인 정신과 의사 나코시 야스후미는 "상대방이 '나를 알아줄 것이다'라고 기대하면 알아주지 못할 때 쓸데없는 마음의 풍파가 일어납니다. 사실 알아주지도 못하고요"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 세상에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있다. 두 저자는 이를 우리가 뇌로 생각해 만들어진 '뇌화 사회', '의식화 사회'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쉽게 말하면 현대인은 머릿속의 모든 생각을 의식화 즉 말로 치환할 수 있다고 여기기에 '됐어, 나는 다 알았어'라는 식으로 타인을 이해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의식에 지배받아 순간순간 변하는 우리를 의식으로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불교에서는 '마음이란 순간마다 변화하는 운동'이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나조차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타인이 나를 안다는 말인가.

그러니 책은 자식을, 부모를, 남편을, 아내를, 상사를, 친구를 알려는 억지스러운 노력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타인을 생각이나 머리로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착각이 오히려 인간관계를 방해하고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꼬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부부처럼 가까운 관계에서는 조금만 의견이 엇갈려도 '왜 모르느냐'라면서 상대방의 의견을 바꾸어 들어요. 그래서 몇 시간씩 싸우죠. 논쟁을 반복하면서 깨달은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상대방의 의견을 바꾸기란 어렵다'는 사실이지요."

그러면 어찌하란 말일까. 저자들은 쉬이 잡히지 않는 말을 해답으로 내놓는다. '세상일은 다 이해할 수도, 다 이해할 필요도 없다. 사람에게 상처받았다면 사람이 아닌 것을 상대하라. 말이나 정보에 의지하지 말고 밖에 나가 체감하라.'

결국엔 걱정이 많고, 타인과의 관계가 힘들수록 '이상하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감각은 유지하되 그 일을 당장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같은 방향으로 가다가 부딪히지만 않도록 서로 조정하는 것이 바로 요점입니다. '이 사인이 나왔을 때는 말을 걸지 않는 게 좋겠다'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타인을 안다는 착각/요로 다케시/나코시 야스후미 지음/ 지비원 옮김/휴/1만3000원)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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