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육체 속에 막 짓다 만 열반인지
그 비좁은 실내에
천장까지 목숨의 환락을 새파랗게 쟁인 게
반쯤 무너진 잎 마디의
겨드랑이 틈새로 들여다뵈는
징그러운 더위도
택배 선물처럼 수납해
집 뒤 야트막한 자드락에
사소하게 핀
늦여름 달개비꽃.
■매화가 피면 사람들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와아 하고 탄성을 지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수유가 노란 꽃을 맺으면 바삐 가던 걸음을 문득 늦춘다. 그러다 벚꽃을 만나면 너나없이 화사한 꽃그늘 아래로 달려간다. 뿐이랴. 봄이면 목련, 개나리, 민들레, 제비꽃, 영산홍, 복숭아꽃, 라일락, 붓꽃이 나날이 여기저기서 피어오르고 그때마다 우리는 놀라고 기뻐하느라 해가 길어지는 줄도 모른다. 그러다 여름이 오기 시작하면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들 잊는다. "징그러운 더위" 속에서도 꽃이 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늦여름" "집 뒤 야트막한 자드락에" "사소하게 핀" "달개비꽃"을 시로 적는 이의 마음은 그래서 귀하고 드물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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