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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라이브 리뷰] 손열음의 네빌 마리너 추모 앨범 '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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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 객원기자

한정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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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라이선스 클래식 앨범이 국내에서 출반된 이후 1980, 1990년대 라디오에서 모차르트의 현악 합주곡이 흐르면 "네빌 마리너가 지휘하는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Academy of St. Martin-in-the-FieldsㆍASMF)의 연주"라는 소개가 곧잘 따라 붙었다. 최근 작고한 체코 영화 감독 밀로스 포먼의 영화 '아마데우스' 음악 자문도 마리너(1924∼2016)가 맡았고, 1991년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을 기념하는 필립스 레이블의 전곡 녹음 프로젝트를 CD 180장에 완수한 이도 마리너다.

20세기 중후반에 음악적 감수성을 키운 이들에게 마리너의 모차르트가 끼친 영향력은 지대하다. '신동' '천재' 아우라에 갇혀 탐미적으로 모차르트를 연주해야만 하던 20세기 초중반까지의 도그마 역시 '아마데우스' 이후 더욱 거세진 시대악기 연구에 힘입어 호쾌하고 가벼운 모차르트도 용인하는 방향으로 세상이 변했다. 마리너의 연주는 역사주의와 거리가 멀었지만 그의 해석을 통해 동시대 음악가들이 모차르트관을 정화했다.
1986년 강원도 원주 태생의 피아니스트 손열음도 마찬가지다. 2012년 ASMF 내한공연 때 모차르트 협주곡 연주를 제안하자 손열음의 첫 반응은 "지휘가 네빌 마리너인가요"였다. 당시 지휘는 영국의 신예, 조너선 코헨의 몫이었지만 ASMF는 내한 전 동영상으로 손열음의 모차르트 협주곡 카덴차를 먼저 확인하고는 악보에 손열음의 해석을 추가로 기보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제한된 시간에 한 번 만나고 끝날 인연이라면 보통 이런 작업은 오가지 않는다.

손열음의 모차르트는 전문가들에게 일찍부터 각광받았다. 2005년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콩쿠르에 입상(3위)했고 당시 심사위원장인 아르에 바르디가 곧바로 이스라엘 필하모닉에 초청을 주선해 연주한 작품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2번이다.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선 모차르트 협주곡으로 특별상을 받았고, 올해부터 예술감독을 맡는 평창 대관령음악제에선 2011년 협주곡 23번으로 축제에 싱그러움을 더했다. 한동안 앙코르로 피아니스트 파질 사이, 아르카디 볼로도스가 즐겨 사용한 모차르트 '터키' 행진곡(소나타 11번 3악장) 버전을 본인 스타일로 재생했다.

2016년 4월 서른의 손열음과 아흔 둘의 마리너가 한국에서 만났다. ASMF와 내한한 마리너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기업 연수원 안의 공연장에서 손열음을 봤고 모차르트 협주곡 21번을 함께 했다. 마리너는 손열음에게 "너의 모차르트 연주는 특별하다"면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의 개시를 권했고, 곧이어 런던에서 모차르트 협주곡 녹음이 이어졌다.
내한 두 달을 앞두고 런던에 체류 중이던 필자는 마리너의 언론 매니저를 통해 영국 남서부 데본(Devon)의 자택 인터뷰를 요청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대면 환담은 거절했지만 마리너 측은 일찍부터 손열음에 관한 정보를 궁금해했다. 용인의 첫 만남 이후 마리너의 영국 본가로 찾아간 손열음은 메모가 빼곡한 모차르트 악보들도 볼 수 있었다. 같은 해 10월 마리너가 세상을 떠나고 추가 녹음 작업은 결국 미완으로 남게 됐다. 최근 출반한 손열음의 새 앨범 '모차르트'는 마리너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녹음곡인 협주곡 21번과 그를 추모하는 마음을 여러 독주곡에 담았다.

마리너와 손열음이 만난 시간은 짧았지만 순간으로도 서로를 알아보는 건 충분하다. 모차르트가 품었던 다단한 감정들이 손열음의 미소와 함께 손끝에서 터지는 찰나에 2012년의 코헨도 놀랐고 2016년의 마리너도 그랬으리라. 2012년 ASMF와 모차르트를 연주하면서 손열음은 쉴 틈 없이 입을 움직였는데 음계 이름을 하나씩 불러 가면서 치는 오랜 습관이다.

언어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듯 모차르트가 음악가를 음악가답게 만든다. 왜 마리너는 손열음의 모차르트가 특별하다고 했을까. 모차르트를 매개하는 손열음의 특별한 언어 능력은 무엇인가. 숙성된 모차르트는 인간의 성숙과 함께 하는가. 앞으로 손열음의 모차르트가 어떠할지 예측할 단서를 글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손열음은 글에서도 정서와 논리를 잘 정리해서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정서와 퇴고에 애쓴다. 마리너 역시 손열음의 표현력과 전달력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객원기자

사진=크레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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