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오후 한 詩]끝/김병호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땅에 스몄던 그림자가 증발하다 맞닥뜨린 과포화의 경계, 거기서 꽃핀 먹장구름은
절망의 살얼음을 딛고 선 떨리는 발끝이다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를 가진 뽕나무 지나자 시선마저 증발하는 도로의 끝
닿은 곳이 끝이라 믿고 쓰러진 시선의 무덤, 무 뽑은 자리
허공의 젖무덤인 줄 알았던 꺼진 봉분은, 아니 땅의 자궁이다 다시 꽃이다
잠 속을 꽉 채운 안개에 휩쓸려
그렇게 나 안개의 끝이 되어
미친바람의 창끝 되어 소나기 사이를 휘젓던 아침

손가락이 맺은 핏방울 하나
겨울 하늘과 포개어 그물맥으로 먼 시간을 겨눈 마지막 이파리
붉은 씨앗 맺힌 혀끝
맨 끝은
흔들리는 맨 끝은 모두
꽃이다


■살다 보면 흔들릴 때가 있다. 우유부단해서이거나 욕심에 휘둘려서가 아니라, 도무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서 그저 흔들릴 때가 있다. 나무처럼, 겨울나무처럼, 한겨울 속을 맨살로 버티는 나무처럼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어쩔 길이 없어서 다만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 흔들린다는 것은 실은 혼신을 다해 견디는 것일 것이다. 이를 사리물고 주먹을 꼭 쥐고서 말이다. 어쩌면 꽃은 그런 흔들림, 견딤의 "맨 끝"인지도 모르겠다. 흔들리다 멈추거나 견디다가 슬쩍 놓아 버린 자리가 아니라 도대체 헤어날 길이 없었던 심연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가 꽃인지도 모르겠다. 꽃이 저마다 최선을 다해 피는 까닭은 그런 심연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채상우 시인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어른들 싸움에도 대박 터진 뉴진스…신곡 '버블검' 500만뷰 돌파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국내이슈

  • 공습에 숨진 엄마 배에서 나온 기적의 아기…결국 숨졌다 때리고 던지고 휘두르고…난민 12명 뉴욕 한복판서 집단 난투극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해외이슈

  • 고개 숙인 황선홍의 작심발언 "지금의 시스템이면 격차 더 벌어질 것" [포토] '벌써 여름?'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PICK

  • 1억 넘는 日도요타와 함께 등장한 김정은…"대북 제재 우회" 지적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