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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책과 저자]옹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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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죽으면 먼저 간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대요"

디자인=최길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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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본다. 세상을 떠나기 전 어머니, 두 아이, 우리 부부가 식탁에 앉아 카메라를 바라본다. 오래된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확대를 하면 모자이크 현상이 발생해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게 된다. 13년이 지난 지금, 확대를 해서 자세히 보려고 하면 흐릿해지는 이 사진은 나에게 추억의 본질을 말해주는 듯하다.
 내가 지금부터 쓰려는 이야기는 우리 식구가 아직 여섯 명일 때, 내가 외국에서 공부할 때 우리 집에 와 식구가 된 털북숭이 강아지, 2002년 가을에 우리집에 와 2017년 9월 30일 오후 9시55분 우리 부부의 품안에서 숨을 거둔 몰티즈(Maltese) 한 마리에 대한 이야기다. 녀석의 이름은 모데라토 칸타빌레, 애칭은 칸타였다.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라는 음악용어를 딸이 골랐다.

 칸타는 내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취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2011년 세모(歲暮)에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식구들이 모두 잠든 한밤에 가슴 높이까지 몇 번이고 뛰어오르며 환영했다. 녀석은 뜨거운 환영의 이벤트를 평생 동안 매일 저녁 빠짐없이 거행하였다. 칸타는 나에게 이타카로 돌아간 오디세우스를 맞이하는 아르고스와 같았다. 내 무릎에 앉아 잠들기를 원했고, 내가 생각에 사로잡힌 밤마다 곁을 지켰다.

 정말이지 녀석은 특별했다.
 이 견종은 지중해의 몰타(Malta) 섬에서 처음 생겨나 몰티즈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체중이 3.2㎏ 이하인 소형견이라는데, 칸타는 덩치가 컸다. 움직임은 모데라토가 아니라 알레그로나 프레스토였고, 식성이 좋다 못해 식탐까지 있었다. 특히 식구들이 피자나 빵을 먹을 때는 식탁 주변에서 어찌나 노골적으로 시위를 하는지 한 조각 떼어주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고향이 지중해라 그런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나이가 많기는 했지만 건강했기에 1~2년 더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칸타는 췌장이 갑자기 나빠져 고통 속에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동물병원 의사는 안락사를 권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녀석의 생명을 거둘 권리가 없기에, 고통스럽지만 지켜보며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칸타가 마지막 숨을 몰아쉰 다음 나는 목이 멘 채 허둥지둥 심폐소생을 시도했다. 아내가 엉엉 울면서 말렸다. "이제 그만 쉬게 해 줘요…"

 칸타가 우리 품에서 죽었다고는 해도 너무나 괴로운 시간이었기에 이별의 의식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슬픈 작별은 반나절쯤 전, 병원에서 있었다고 한다. 평소 칸타를 귀여워한 장모가 병원에서 수액을 맞는 녀석을 보러 갔다. 축 늘어져 있던 녀석은 장모가 병원을 떠나려 하자 눈을 번쩍 떴다. 녀석의 몸에 연결한 상태측정기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혈압이 치솟으면서 수액을 연결한 관이 쑥 빠졌다고 한다. 이 말을 전해 듣고 가슴이 아팠다.

 칸타는 김포에 있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화장되어 새하얀 유골함에 몸을 담았다. 다가오는 겨울을 녀석과 함께 견디고, 슬픔도 어지간히 깊은 곳에 간직한 다음 시골에 있는 내 집 정원에 묻어줄 생각이다. 거기에는 생전에 어머니가 심은 단풍나무 두 그루가 있다. 어머니는 한 그루를 큰아이에게, 다른 한 그루를 작은아이에게 선물했다. 그 아래에 묻겠다.

 16년이나 함께 산 칸타와 작별한 우리 식구들은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슬픔은 극심한 우울증을 불렀다. 나는 페이스북의 문을 닫아버렸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책이나 붙들고 늘어지는 나에게 어느 저녁 아들이 책을 두 권 가져다주었다. 제목은 '옹동스'. 고양이 집사의 이야기였다. 1권은 2015년 3월, 2권은 2016년 10월에 초판이 나왔다. 예쁜 그림과 따뜻한 글이 담겨, 늘 곁에 두고 싶은 고운 책이었다. 거기서 이런 구절을 찾았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 때 되면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다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때 나옹(고양이)에게 물어볼 것이다.
 "넌 나를 어떻게 생각했어?"
 "응, 그건 말이지…"
 그 때 되면 다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어딘가에 숨어서 울고 싶어졌다. 나는 생각했다. '아, 칸타는 지금쯤 녀석이 세 살 되던 가을날 세상을 떠난 내 어머니를 만났겠구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칸타를 소개했겠지. 칸타는 지금쯤 나와 내 아이들과 생김새가 비슷한 어른들 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야. 그리고 내가 죽어 레테(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를 건널 때면 맞은편 기슭에 나와 꼬리를 흔들며 멍멍 짖겠지. 그 때 되면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다 알 수 있으리라. 녀석에게 물어봐야지. 넌 나를 어떻게 생각했어?'

 고양이 집사의 책에서 본 이야기가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그 곳에 흐르는 시간은 성경(시편90) 구절처럼 '천 년도 하루와 같아, 지나간 어제 같고 깨어 있는 밤과 같'기를. 부디 천국에서는 10년이 1분이었으면 좋겠다. 녀석이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칸타야. 다시 만나, 꼭.

옹동스 1 : 나는 행복한 고양이 집사  
옹동스 2 : 우리 자리로 돌아오다 
스노우캣 지음/예담/각권 1만4800원

옹동스 1 : 나는 행복한 고양이 집사 옹동스 2 : 우리 자리로 돌아오다 스노우캣 지음/예담/각권 1만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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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을 쓰기 위해 스노우캣의 블로그와 연재 페이지를 살펴보다가 나옹이라는 고양이가 지난달 세상을 떠났음을 알았다. 작가는 9월25일자 블로그에 '나옹이 무지개 다리 건넜습니다'라고 적었다. 다행히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나옹이의 명복을 빈다. 천국에서 칸타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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