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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야기]공기와 접촉해야 더 맛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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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크 미리 따놓는 '브리딩' vs. 다른 용기로 옮겨 담는 '디캔팅'
탄산가스·이스트 냄새 남았을때 품질 개선엔 어느정도 효과적
정상적 제품이라면 공기 접촉이 맛 더 좋게 만든다는 보장 없어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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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서비스하기 전 30분이나 한 시간 전에 미리 코르크를 따 놓으면 와인이 공기와 접촉해 맛이 좋아진다면서, 이를 '와인의 숨쉬기(Breathing)'라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오래된 레드와인을 마실 경우에 예약된 레스토랑에 몇 시에 갈 테니까 미리 코르크를 따 놓으라고 부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와인의 공기접촉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살펴본다면 코르크를 따서 둔다고 했을 때 공기와 접촉하는 와인의 표면적은 병 입구만한 면적인데 한 시간 혹은 그 이상 둔다고 해서 공기와 접촉이 얼마나 이루어질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기접촉으로 와인의 맛이 개선된다면 차라리 와인을 글라스에 따라 놓고 흔들거나 와인을 다른 용기로 옮기는 디캔팅(Decanting)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와인을 글라스에 따라 놓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리고 공기접촉이 실제로 와인의 맛을 개선하는지 알아볼 필요도 있다. 와인을 디캔팅하면 영 와인(1~2년 저장해 5년 이내에 마시는 와인)에 있는 타닌의 거친 맛이 부드럽게 된다고 하지만, 영 와인의 신선한 풍미는 사라지게 된다. 오래된 와인인 경우는 침전물을 제거할 수 있겠지만 이것도 미리 해 놓을 것이 아니라 서빙하기 직전에 하는 것이 좋다. 왜냐면 15~20년 된 와인은 코르크를 따놓고 오래 두면 급격하게 그 질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와인을 공기와 접촉시키는 일은 오래된 와인보다는 영 와인에 적합하다.

와인을 서비스하기 전에 개봉해 두면 맛이 좋아진다는 말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을 수 있다. 스파클링와인이 아니면서도 잘못돼 탄산가스가 차 있을 때는 이 가스를 없앨 수 있다. 또 영 와인에 좋지 않은 이스트 냄새가 남아 있을 경우 그 양이 극히 적어서 겨우 감지할 수 있는 농도라면 탄산가스와 같이 날아갈 수 있다. 그리고 숙성 중에 미생물에 의한 변화 때문에 나쁜 냄새가 나는 경우도 개선될 수 있다. 또 와인에 아황산이 너무 많을 경우도 이 가스가 날아가므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즉 품질이 나쁜 와인의 경우에는 미리 개봉해 두면 맛과 향이 개선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19세기 와인의 품질이 불안정했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와인을 미리 개봉해 두면 바람직한 향이 증가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0분이나 1시간가량의 짧은 시간에 무슨 화학반응이 일어나 우리가 인식할 만한 좋은 향이 나올 수 있을까. 오히려 디캔팅을 한다면 반응이 어느 정도 촉진되겠지만 바람직한 향이 유실될 우려가 있다. 물론 바람직한 변화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까 디캔팅으로 와인 맛이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웬만큼 맛에 예민하지 않으면 그 차이를 느낄 수도 없다.

병 속에 침전물이 가라앉아 있는 와인은 반드시 디캔팅을 해서 이를 제거해야 하는데, 이것도 미리 해 두는 것이 아니고 서비스 직전에 손님 앞에서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혹시 경험적으로 와인을 미리 개봉해 두면 맛이 좋아진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때 양쪽의 온도가 같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아무래도 온도가 낮은 와인 저장고에서 방금 가져온 와인은 온도가 낮고, 한 시간을 두고 난 다음에는 온도가 올라가서 떫은 맛이 더 부드럽게 느껴질 수는 있다.

이와 같이 와인에 대한 상식은 그 이론을 과학적으로 검증해서 그 원리와 이유를 잘 파악해야 하는데, 우리는 무조건 와인에 대한 이론을 그 이유도 모른 채 따라서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우리도 와인에 대한 상식을 한 차원 높일 때가 됐다. 왜 그런지 그 원리를 알고 맛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자신의 주관대로 주장할 수 있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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