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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질문들―리틀핑거후크 소년이었던 스무 살에게/유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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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영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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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로 짬뽕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스무 살로부터 시작하지 트럼펫을 평생 불고픈 소년이었을 때 손가락들은 트럼펫 밸브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춤을 추었지 그게 간당간당한 삶의 절정이라는 걸 몰랐지 상처 입은 스무 살의 손등엔 희미한 마크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지 높은음자리였는지 물음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배달을 하고 들어올 때마다 무늬는 바뀌어 있었지 리틀핑거후크를 하나씩 누르면 상상하던 음들이 튀어나오는 소리가 보였다고 스무 살은 눈동자 속 태양을 보여 주며 이야기했지 열아홉을 넘어 스무 살의 손가락들은 노래의 음을 찾지 못했지 오토바이 핸들에서 손가락들을 움직여 봐도 찾고 싶은 길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지 의미 없는 희망은 손가락 지문 속으로 스며들고 음계는 날아가고 없었지 손님이 남기고 간 면 한 가닥으로 높은음자리표를 만들고 손톱으로 꾹꾹 눌러 끊었지 트럼펫을 평생 불고픈 소년이었던 적이 있었지 스무 살에게는 짬뽕을 싣고 배달하러 손가락들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지 리틀핑거후크 누르듯 오토바이 핸들을 돌리고 있었지 뜨거운 국물이 흘러 손등에서 사라진 낮은음자리표를 음각으로 빨갛게 새기고 있었지


■내가 스물한 살이었을 때 스무 살이던 대학 후배가 가르치던 야학에서 크리스마스이브에 문학의 밤을 열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스무 살이던 어떤 여공이 이런 내용의 산문을 낭송한 적이 있었다. "제가 공부하는 이유는요, 나중에 제 아이가 꿈이란 게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해 주기 위해서예요." 모르겠다, 이 시를 읽는데 이십육 년 저편의 그 스무 살 여공이 자꾸 생각나는 까닭을. 아니 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두렵기까지 하다, 당신이 직감하고 있는 바로 그 이유로. 다만 그 꿈을 이루었길, 행복하길 바랄 따름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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