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정권이 상식적 궤도를 이탈하면, 국가이익 보다는 정권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청와대 수석 등을 통해 국세청장의 권한 행사를 왜곡시킬 수 있다. 이 경우 국가경제에 끼치는 폐해는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 사태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청와대 등 권력기관으로부터 국세청장에게 정권에 협조적이지 않은 특정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라는 지시가 있다고 하자. 이는 불법이다. 세무조사는 법에 규정된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국세기본법 제81조의 6).
그런데 현실에선 청와대 등 권력기관이 수집한 특정기업의 위장 또는 가공거래 혐의가 있는 자료를 국세청장에게 슬그머니 건네주고, 이를 바탕으로 세무조사 대상자로 선정되도록 압력을 가한다. 혐의가 없는 기업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무조사를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이는 겉으로는 합법일지 몰라도 속내는 합법을 가장한 불법이다.
부당한 세무조사가 이전 정권에서도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최순실 일당이 그들의 사익을 추구할 수단으로 특정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협박카드로 들고 나온 것 아니겠는가. 물론 국세청은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믿고 싶다.
국세청장은 세무조사를 행하는 국가조직의 정점에 있는 자다. 대통령이 임명하니 그의 눈치나 정권의 부당한 하명을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를 받아야 하니 입법 권력의 압력이나 청탁을 넣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국세청장에게 잘 봐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바로 이런 세력에서 독립해야 국세청이 살고, 국가도 지속 가능하다.
세법상 세무조사권은 공평과세를 위해 최소한의 범위에서 실시되고, 다른 목적(예컨대 정권의 재벌 손보기)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국세기본법 제81조의 4). 차기정부의 국세청장은 정권에 밉보인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등 합법을 가장한 불법적 지시에 강단 있게 맞설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정치적 의도가 개입될 소지가 있는 특별 세무조사에 대해선 조사대상 선정부터 조사 종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제3의 기관이 모니터링해 국회 등에게 보고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둘 필요가 있다. 국세청장 혼자 힘만으론 합법을 가장한 정치권의 탈법적 외압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세무조사권의 악용 또는 남용의 소지를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정권도 유지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던져준 값진 교훈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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