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대에 심의겸과 김효원의 이조전랑 자리를 놓고 생긴 반목으로 붕당정치는 시작됐다. 이 문제가 도화선이 돼 조정의 인사들이 경북궁 동쪽 사는 김효원 중심의 동인(東人)과 상대적으로 서쪽에 거주하는 심의겸을 중심으로 한 서인(西人)으로 나뉘었다. 붕당정치의 초기에는 동인의 세력이 우세했으며, 정여립의 반란으로 잠시 서인이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세자 책봉을 놓고 선조에게 광해군을 주청한 서인의 거두 정철의 처리문제를 두고서, 동인은 제거하자는 이산해 중심의 북인(北人)과 유배형이면 족하다는 우성전 중심의 남인(南人)으로 갈라섰다. 현실정치에 대립하던 북인들은 다시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大北)과 영창대군(적자)을 지지하는 소북(小北)으로 분파했다.
현종과 숙종 때 예송과 환국을 거치며 점차 서인이 득세하자, 남인은 권력기반을 잃었다. 서인은 다시 남인 처분을 놓고 강경파인 노론과 온건파인 소론으로 분열됐다. 영조가 즉위하며 정미환국을 통해 노론이 정권을 잡았다. 이후 노론의 권력은 점차 영조도 능가할 정도였다. 사도세자는 이런 노론을 견제하고자 소론과 친밀히 지냈으나, 결국 노론에게 제거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노론은 다시 사도세자를 동정하는 시파와 이를 무시한 벽파로 나뉘었는데, 벽파가 정권을 잡았다.
정조는 노론의 우세를 견제하고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탕평정책을 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에는 노론 일부 가문에 의한 본격적인 세도정치가 시작됐다. 정조 때 홍국영이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국정을 천단하던 것이 효시다. 도승지 겸 금위대장에 임명된 홍국영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그러나 12세의 순조가 즉위하자 정조의 유탁을 받은 김조순의 안동김씨가 정권을 잡았다. 헌종 때 외척인 풍양조씨의 세도정치 기간을 잠시 제외하면 안동김씨 정권이 철종 때까지 약 60년 동안 지속됐다.
우리는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대통령제는 여러 문제점이 상존하지만 지난 70년간 그래도 이만한 경제발전을 가져온 것은 대통령에 의한 강한 리더십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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