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운동을 전 세계에 보도한 앨버트 테일러가 서울에서 살던 빨간 벽돌집 '딜쿠샤'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날이 서서히 풀리는 봄이 오고 있다. 곧 3월이다. 3월하면 두말할 것 없이 3·1운동이 떠오른다. 3·1운동과 관련해 기억해야할 외국인이 있다. 침략자 일본을 향해 들고 일어섰던 3·1운동을 전 세계에 가장 먼저 알린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다.
앨버트 테일러는 구한말 우리나라에 들어와 무역업을 하면서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1919년 3·1운동이 발생하자 이 소식을 세상에 알렸다. 또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제암리 학살사건(3·1운동 당시 일본이 제암리에서 주민을 집단 살해한 만행사건)을 전 세계에 최초로 보도했다.
서울 종로구 행촌동엔 그가 살던 빨간 벽돌집, 딜쿠샤(DIL KUSHA)가 있다. 딜쿠샤는 테일러가 1923년부터 일제에 추방당한 1942년까지 20년 간 살았던 곳이다. 딜쿠샤는 힌디어로 ‘희망의 궁전’을 뜻한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당시 서양식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근대 문화유산이다.
딜쿠샤는 해방이후 방치되다시피 했다. 아무도 딜쿠샤의 역사를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동안 10여가구가 무단 점유해 살았다. 2000년대 들어 딜쿠샤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6년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인 브루스 테일러가 방한해 아버지와 딜쿠샤의 역사를 소개하고 관련 사진과 사료를 서울시에 기증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3월이 다가오자 3·1운동 정신을 느낄 수 있는 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당시 테일러와 함께 3·1운동을 취재했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 전시회도 서울시청 로비에서 열리고 있다. ‘34번째 푸른 눈의 민족대표’로 불리는 스코필드 박사도 3·1운동과 제암리·수촌리 학살사건을 사진에 담아 전 세계에 전했다.
전시회는 다음 달 9일까지 이어진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운영된다.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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