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자 세부담 형평성 내세웠지만
퇴직금 납입가구를 부자 분류 논란
절세한도까지 압입하는 특성도 외면
저축성보험의 비과세 혜택 축소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가 늘어나는 복지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비과세 감면 혜택을 축소하고 있어서다. 저축성보험 역시 일시납에 한해 기존 2억원이었던 비과세 한도가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이 꾸준히 나왔다.
하지만 공개된 축소 폭의 강도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소득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일시납 보험의 비과세 한도는 현행 2억원에서 1억원으로 축소된다. 월적립식 보험도 총 납입액의 1억원까지만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결국 내년부터 개인당 총 1억원까지만 비과세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지금까지는 일시납을 통해 2억원의 비과세혜택을 받은 소비자가 월적립십 보험을 가입하더라도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와 관련 조세형평성에 따라 고소득자의 세 부담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게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 설명이다. 10년 이상 1억 원 이상의 돈을 묻어둘 수 있는 사람은 고소득층으로 볼 수 있는 만큼 조세혜택을 축소해야 한다는 게 박 의원 생각이다.
김씨처럼 노후자금으로 저축성보험을 활용할 퇴직자를 고소득층으로 일괄 규정한 것도 논란 거리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55세 남자를 기준으로 2억원을 일시납으로 거치기간 없이 30년간 받는다면 매월 수령액은 71만원 정도 된다. 하지만 똑같은 조건에 일시납금을 1억원으로 줄인다면 매월 받는 돈도 35만원으로 절반 이상 줄게 된다. 가뜩이나 고령화시대 부족한 공적연금에 대비해 사적연금 준비를 장려해야 할 상황에서 퇴직금을 일시납으로 납입한 가구를 증세 대상인 '부자'로 분류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월 적립식 저축성보험 역시 마찬가지다. 월 적립식 한도를 총납입액 1억원으로 설정하고 30세부터 20년간 매월 균등 납입한다고 가정하면 월 납입액은 41만원 수준이다. 이렇게 납입하면 55세 기준으로 20년간 매월 48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이는 지난 10월 국민연금공단이 발표한 부부기준 적정 노후생활비 217만원과는 큰 차이가 난다. 이 정도론 노후소득 대체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의미다. 역시 노후준비를 위해 40만원대의 보험료를 납입하는 가구를 부자로 보고 세제혜택을 줄여야 하는지는 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기대했던 부자증세는 당장 거두기 힘든 반면 보험사와 보험설계사의 피해는 즉각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실제 2013년 소득세법시행령 개정으로 보험차익 비과세 요건 강화 이후 보험차익 상품의 계좌수와 가입인원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13년 98만계좌에 달했던 보험차익 상품의 계좌수는 지난해 84만 계좌로 줄었고 가입인원도 이 기간 78만명에서 67만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현재 저축성보험의 80% 이상은 월 적립식 보험이 차지하고 있다.
보험업계의 수익 감소는 세수 감소로도 이어진다. 2014년말 기준 보험설계사의 사업소득세는 525억원이었고 2015년말 보험사의 법인세는 1조7799억원이었다. 만약 저축성보험의 판매 감소 등으로 보험설계사의 사업소득세와 보험사의 법인세가 10% 준다면 세수 감소액은 1883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저축성보험의 비과세 축소는 파급효과가 큰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검토 없이 진행되고 있다"며 "법 시행에 앞서 보험차익 비과세 축소 특히 월 적립식 한도설정에 대해 반드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각계 의견을 수렴해 최종 시행령을 만들어 이달 말 입법예고를 거쳐 내년 1월 중 시행할 계획이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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