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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세상의 모든 침묵을 말하다…'침묵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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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사회문화적 현상 의미 부여

침묵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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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침묵도 음악이 될 수 있을까? 2004년 1월16일 영국 BBC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연간행사인 '작곡가 주말'의 오프닝 공연으로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1912~1992 미국)의 작품 '4분 33초'를 선택했다. 1952년 존 케이지가 발표한 이 곡은 침묵의 작품이다. 엄연히 3악장까지 존재하지만 4분 33초 동안 관객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침묵밖에 없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한 악장이 끝날 때마다 음표도 없는 악보를 넘기는 모습을 보고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상상해보자. 심지어 BBC 라디오 방송은 이 공연실황을 생중계했다. 잔잔한 침묵이 전파를 타고 전국에 퍼졌다. 케이지는 묻는다. "침묵 같은 것이 세상에 존재합니까? 설사 사람들한테서 도망친다고 해도, 여전히 뭔가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일랜드 출신의 칼럼니스트 컬럼 케니(66)가 쓴 '침묵의 힘'은 케이지의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세상의 모든 '침묵'이 등장한다. 저자는 방대한 양의 사례와 자료를 무기삼아 문학, 음악, TV, 영화에 나오는 침묵에서부터 침묵에 관한 이론과 종류까지 전방위에 걸쳐 침묵을 다룬다. 그는 단순히 침묵을 "말이나 소리의 부재, 혹은 말이나 소리의 반대말"로 이해하지 않는다. 침묵은 "일상생활의 순간순간 내부에,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박혀있는 영역"이다. 우리가 침묵의 쓰임을 제대로 이해해야지만 존재의 물리적·심리적·영적 차원에 대한 이해와 활용을 강화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저자는 침묵을 하나의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 파악하고 다방면에서 그 의미를 짚어낸다. 침묵에 대한 가치판단은 다양하다.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의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는 말은 침묵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격언이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플리니우스도 서한문에서 "인간의 정신은 침묵과 어둠 속에서 놀라울 정도로 풍요로워진다"고 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침묵하는 사람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자신감 부족을 무심코 드러내는 것"이라 했다. 잠언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도 계속 침묵을 지키면 지혜로워 보이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슬기로워 보인다(잠언 17장 28절)." 침묵할 때와 침묵하지 않아야할 때를 구분하는 일은 독자들의 몫이다.

다양한 예시 중에 예술 작품에서 어떻게 침묵을 다루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1964년에 발표한 사이먼 앤 가펑클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The sound of silence)'는 "침묵은 암처럼 퍼져나간다"고 노래한다. 노래는 지금 어딘가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늘 의문을 품으라고 사람들을 촉구한다. 스웨덴 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1957년작 '제7의 봉인'은 신의 침묵이란 주제를 가장 예술적으로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글쓰기에 침묵을 활용한 작가 버지니아 울프, 침묵 속에 자신을 감추며 살았던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침묵을 노래한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 등 다양한 인물 중에서 김기덕 감독(56)의 이름이 반갑다. 저자는 감독의 2004년작 '빈 집'을 소개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고 신비로운 침묵에 휩싸여 있다"고 했다.
"왜 침묵이 중요한지 알아내고, 침묵이 어떻게 인간 고유의 본질 가운데 하나로 존재하는지 파악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치열하다. 하지만 저자가 그 방대한 자료 가운데 법정스님의 '소음기행'을 한 번이라도 접했다면, 보다 쉽게 해답을 구하지 않았을까. "인간의 말은 어디에서 나와야 할까. 그것은 마땅히 침묵에서 나와야 한다.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말은 소음과 다를 게 없다. (중략) 투명한 사람끼리는 말이 없어도 즐겁다. 소리를 입 밖에 내지 않을 뿐 무수한 말이 침묵 속에서 오고 간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중 '소음기행')

(침묵의 힘 / 컬럼 케니 / 신윤진 옮김 / 글누림 / 1만5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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