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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공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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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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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런던을 방문해 2000년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 이하 KF) 지원으로 개설된 영국박물관내 한국실(The Korea Foundation Gallery)을 둘러보았다. 마침 추석을 앞둔 때여서 인턴직원 한 사람이 큐레이터를 도와 추석맞이 특별전시와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인근의 왕립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의 한국관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KF가 박물관에 파견한 젊은 미술학도들로 세계 수준의 박물관에서 현장 경험을 쌓고 있는 중이다. 왕복 항공료와 최소한의 현지 생활비가 지원의 전부지만 본인들에게는 여간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영국 왕립 국제문제연구소인 채텀하우스와 공동으로 유럽 각국의 젊은 학자들을 초청해 한반도와 동북아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 후 미국 워싱턴에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외교협회(CFR) 대표를 각각 만나 내년 사업방향을 의논했다. 이 연구소들은 KF의 지원으로 한국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CSIS의 빅터 차 교수는 연구소 예산과 KF의 지원으로 'beyondparallel.csis.org'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해 한반도의 최근 정세와 함께 통일연구의 기반이 되는 각종 자료를 독특한 방식으로 심층 분석, 게시해 미국은 물론 우리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디애나주립대학에서는 한국학센터 개소식을 축하하기 위해 북미 전역의 한국학 원로교수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학의 장래에 대한 학술회의가 열렸다. 그 이튿날 이들 북미 지역 한국학의 산 증인들을 모시고 거행된 개소식에서 맥로비 총장은 축사를 통해 한국학 교수요원 확보를 위한 KF의 너그러운 지원이 아니었으면 오늘날 박사과정까지 가능한 한국학센터는 가능하지 않았을 거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리셉션에서 만난 미국인 한국학 원로교수들은 북미에서 한국학이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부와 KF의 지원이 절대적이었음을 한 목소리로 증언했다.

국가 예산을 집행하는 KF는 국내 민간단체나 해외 연구기관을 지원하고 상응하는 결과물을 요구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박물관 인턴십과 같이 특정 분야 전문가를 길러내는 사업이나, 해외 젊은 인사들이 다양한 분야의 한국학은 물론 한반도 정세나 동북아 지역 전문학자로 자리 잡도록 지원하는 사업은 즉각적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사업은 자칫 선심성 공짜 사업으로 비쳐 성과 위주의 예산 배정이나 경영평가에서 제 가치를 인정받기 쉽지 않지만, 그 보이지 않는 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

미시건 대학에서 KF지원 교수의 지도를 받아 한국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제는 인디애나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수잔 황’ 교수, KF의 펠로십을 비롯한 국내기관의 지원을 받으며 런던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공부한 ‘채식주의자’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씨 사례들은 공짜란 경제원칙에 맞지 않으며 게으름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자그만 모나리자 유리액자 앞, 인파에 밀려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갈 길 바쁜 관광객에게는 입장료가 아까울 수 있다. 반면,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마주친 자화상 속 늙은 렘브란트의 깊은 눈빛에 빠져드노라면 무료입장 정책을 고수해온 그 누구에겐가 절로 고마운 생각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고마움은 마음의 빚이 되는 법이다. 공공서비스의 대가를 직접 수혜자에게서 징수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 여부는 제공기관의 철학이나 사업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으나, 미래 인재를 키워내는 사업에서만큼은 '공짜의 힘'을 믿고 싶다.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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