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한 미래 생각하며 현재를 희생하는 그들
[아시아경제 금보령 기자, 문제원 기자]"어제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추석 때 안 내려 오냐고 물으셨어요. 내려가기 불편하고 공부도 해야 하니까 안 가겠다고 했는데 말씀은 안 하셔도 서운하신 것 같았어요."
9일 저녁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에서 만난 연모(23)씨의 말이다. 대구에서 혼자 왔다는 그는 내년 3월에 있을 경찰공무원 시험 합격을 목표로 공부 중이다.
한 공무원학원 홍보물에는 연휴 시작인 14일부터 18일까지 추석 특강이 진행된다고 쓰여 있었다. 수업은 한국사·행정법 등 과목별로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30분까지 다양했다. 이 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다른 공지의 조회수는 많아야 3000회 정도인데 비해 '2016년추석특강안내' 글은 이미 1만5000회를 넘겼다.
대전에서 올라왔다는 전형진(27)씨는 "추석 특강은 안 듣지만 연휴 동안 자습실에서 공부할 예정"이라며 "다른 사람들도 주말이나 연휴 때 쉬지 않고 더 열심히 공부한다"라고 말했다.
추석 연휴 때 쉬지 않거나 추석 당일에만 쉬는 학원들도 공시생들이 노량진을 못 떠나게 한다. 경남 창원에서 올라온 이모(27)씨는 "수업을 빠지면서 굳이 내려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서울에서 공부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이곳에서 만난 공시생들은 대부분 내년 봄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시험까지 6개월 이상 남았지만 합격에 대한 불안감이 그들을 노량진에 머무르게 하고 있다. 4년째 공시생이라는 손모(29)씨는 "합격한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재를 희생하는 거다"라며 "합격하면 당연히 추석 때 부모님이나 친척들 뵈러 가지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라고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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