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현·정동훈, 복날 '혀'로 취재하다 - 보양음식의 엄지척, 조기15마리와 바꾼다는 그 귀한 고기
대태이도는 '타리섬'으로 주로 불렸고 타리파시는 전국 최고의 파시로 꼽혔다. 파시는 풍어기에 열리는 생선 시장을 말한다. 타리파시가 명성을 떨친 것은 최고의 민어 어장에 인접해 있기 때문이었다. 타리파시에서 취급한 어종도 대개는 민어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어부들은 목포는 몰라도 타리파시는 알 정도였다고 한다. 현대사의 굴곡과 조업 방식의 발전 등으로 지금은 쇠락해 기억하는 사람 드물지만 번성했던 타리파시의 기록은 한 섬의 부흥을 이끌었던 민어의 맛을 짐작하게 한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타리파시는 사라졌지만 민어의 맛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 맛을 찾아 나섰다.
◆일품 보양식 민어탕 = 민어는 여름이 제철인 생선이다. 이 무렵 산란을 앞두고 양분을 잔뜩 쌓은 탓에 살의 맛이 기름지고 달다. 불포화 지방산이 많은 민어의 뱃살은 '바다의 삼겹살'로도 불린다. 특히 탕으로 끓이면 더위에 지친 몸의 기운을 북돋는 보양식으로 제격이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양반들은 여름철 보양식 중 민어탕을 일품(一品)으로 쳤다고 한다. 도미탕이 이품(二品), 보신탕은 삼품(三品)으로 봤다.
백성들이 좋아해 민어(民魚)라는 이름이 붙었겠지만 기실 백성들은 쉬 접할 수 없는 귀한 생선이었다. 조선 왕의 치적을 엮은 역사서 '국조보감'에는 민어의 위상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나온다. 숙종 12년, 임금이 팔순을 맞은 우암 송시열에게 은전과 함께 민어 20마리를 하사했다고 한다. 당시 가장 힘이 셌던 노론의 수장 송시열에게 선물할 정도로 귀하고 특별했던 셈이다. 숙종은 민어와 같은 급으로 조기 300마리도 내렸다. 민어 1마리당 조기 15마리 정도 값어치를 한 것이다.
민어 귀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귀한만큼 가짜도 흔하다. 민어와 생김새가 비슷한 중국산 홍민어(점성어)가 어시장 곳곳에 숨어들기도 했다. 외형상 비슷해도 맛과 가치는 차이가 크다. 회로 맛보면 민어는 부드럽게 씹히지만 홍민어는 다소 질기다. 탕의 맛 역시 비교할 수 없다.
2명을 기준으로 1kg은 사야 회를 맛보고 탕도 끓일 수 있는데 고가의 생선인 만큼 인터넷 등에서 믿을 수 있다고 정평이 난 곳에 미리 민어를 부탁했다. 이날 잡은 민어는 9kg이라고 했는데 클수록 더 맛이 좋은 생선을 소분해서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는 것은 수산시장의 장점이기도 하다. 노량진의 시스템은 시장에서 생선을 사서 '양념집'이라고 불리는 위층의 식당에서 조리 비용을 지불하고 먹는 방식이다. 같은 재료를 사더라도 어떤 식당에서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다른데 생선 맑은탕을 잘 끓인다는 식당을 선택했다.
민어탕은 푹 고아야 제맛이기 때문에 식당에서는 미리 민어의 뼈와 내장 등 탕거리를 전달 받아 조리를 시작했다고 했다. 과연 한참을 끓인 민어 맑은탕은 빨간 양념을 더하지 않아 맑은탕이라고 부를 뿐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특징이었다. 한 숟가락 국물을 떠서 입에 넣으니 고소하고 기름진 맛이 먼저 느껴졌다. 조미료 넣지 않고 끓였지만 감칠맛이 났고 오래 고아 국물에 자연스럽게 섞인 민어살의 맛은 담백했다. 절로 몸을 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워낙 큰 생선이라 뼈에 붙은 살도 섭섭하지 않았다. 큼직한 뼈를 하나 건져 입에 넣고 훑어 스며있는 진한 국물과 담백한 살을 같이 맛보는 것은 민어탕을 먹는 기쁨 중 하나였다.
민어탕에는 민어전을 곁들이면 제격이다. 민어살을 저며 달걀을 입혀 부친 민어전의 맛은 여느 생선전에 비길 바가 아니다. 민어전을 민어 맛의 최고봉으로 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회로 먹어도 비싼 민어로 전을 부쳐 먹는 게 아깝다고 느껴진다면 '통치'라고 불리는 민어새끼의 살에서 전거리를 얻으면 된다. 맛의 차이는 적지만 값은 훨씬 저렴하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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