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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세일극장/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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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후배였던 혼혈 아저씨가 영사 주임으로 있던 극장. 세일극장에 가면 멋진 생이 있었다. 어른들은 오징어에 소주를 마시고 난 영사실 책상에 걸터앉아 영화를 봤다. 은하철도처럼 환하게 어둠을 가르고 달려가 내 생에 꽂혔던 필름. 난 두 평짜리 영사실에서 한 줄기 계시를 받고 있었다. 그런 날이면 빨간 방울 모자를 쓴 여주인공과 계단이 예쁜 도서관엘 가기도 했고, 윈체스터 장총에 애팔루사를 타고 황야를 달리기도 했다.

 필름 한 칸 한 칸에 담겨 있던 빗살무늬토기의 기억. 토기를 뒤집으면 쏟아지던 눈물들. 어느 날은 영웅이 되고 싶었고, 어느 날은 자멸하고 싶게 했던 날들. 문틈으로 들어온 빛이 세상을 빗살무늬처럼 가늘게 찢어 놓은 곳. 낡은 자전거 바퀴 같은 영사기가 힘겹게 세월을 돌리던 곳.
 난 수유리 세일극장에서 생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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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세일극장/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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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마부인, 나이트메어, 리셀 웨폰, 마지막 황제, 지존무상, 도협,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언터처블, 천녀유혼, 태양의 제국, 프레데터, 경아의 사생활,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폴리스 스토리, 쾌찬차, 인디아나 존스, 탑 건, 무릎과 무릎 사이, 첩혈쌍웅, 첩혈가두, 프라이빗 스쿨,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붐, 길소뜸, 아제아제 바라아제,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이블 데드, 파리 텍사스, 훔친 사과가 맛이 있다, 람보, 록키, 매드맥스, 깊고 깊은 그곳에, 남부군, 밤의 열기 속으로, 백 투 더 퓨처, 뽕, 변강쇠, 얼굴이 아니고 마음입니다, 겨울 나그네, 씨받이, 외인구단, 플래툰, 열혈남아, 유 콜 잇 러브, 예스 마담, 할로윈, 철수와 만수, 비정성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기원이자 궁극, 英雄本色! 그렇게 우리는 수유리 세일극장에서 기꺼이 생을 탕진하기 시작했다.(채상우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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