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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기업의 무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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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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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말 현재 440억파운드(약 74조원)의 시가총액을 자랑하고, 런던거래소 FTSE100지수에도 편입돼 있는 레킷벤키저(Reckitt Benckiser, RB)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인명사고의 주범으로 세계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들은 2001년 한국에 진출한 이래 '옥시싹싹'이라는 상표의 가습기 살균제를 한국에서 판매했는데, 여기에 사용된 폴리헥사메틸렌 구아니딘( PHMG)이라는 성분이 폐질환의 원인임이 밝혀진 것이다. 현재까지 가습기 살균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95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모두 221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을 통해 접수된 전체 피해 의심사례는 사망 225명을 포함 모두 1282명이라고 하니 그 피해는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RB 한국지사는 처음에는 가습기 살균제와 사망 사고 사이의 인과 관계를 부인하다가 검찰의 조사가 본격화되고, 유해성 보고서를 조작한 혐의가 있는 모 대학교수를 체포하자 그제야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보상을 약속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기업의 사회적 무책임과 이를 방조한 정부의 무사안일 행정이 초래한 결과라고 하겠다. 가습기 살균제를 생산 판매한 기업들은 유독성 화학물질에 대한 사전 안전성 실험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전성 실험을 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적 이유로, 제품 출시 당시 시장 규모가 20억원 정도인데 안정성 검사에 드는 비용이 3억원이나 되어 이를 생략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적인 미비로, 가습기 살균제는 공산품으로 분류돼 업체가 안전성 실험 없이 기술표준원에 등록만 하면 생산과 판매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 점이 바로 RB가 대형 로펌 김앤장을 통해 사건 당시 법률에 따르면 자사의 행위에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이다.

더욱이 기업들은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면서도 고의로 이를 왜곡하고 은폐했다. 보도에 따르면 RB는 모 대학교수에게 뇌물을 주고 문제의 제품이 인체에 유해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서를 조작했다고 한다. 미국의 에너지 기업인 엑손모빌이 화석연료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연구보고서를 은폐한 혐의로 현재 미국 정부의 조사를 받고 있고, 담배의 유해성을 알고도 은폐했던 담배회사들이 이후 막대한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린 사례를 보면, 이번 RB의 은폐 왜곡이 가져올 결과가 얼마나 심각할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기업의 무책임이 성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무사안일한 대응이 도사리고 있다. 정부는 2011년 이미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의 원인일 수 있다는 질병관리본부의 발표가 있었음에도 관련 업체에 과징금 5200만원을 부과하고 관련 제품을 회수하는 조치를 내렸을 뿐이었다. 정부의 대응이 이러다 보니 RB를 포함한 관련 업계는 이 사건을 가급적 조용히 덮고 지나가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조물 안전문제가 특히 비윤리적인 이유는 인과 관계가 분명해질 때까지 불특정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는데도 기업은 계속 제품을 팔아 부당이득을 챙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 국가에서 제조물 안전과 관련하여 예방의 원칙, 무과실 책임주의, 그리고 징벌적 배상금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예방의 원칙이란 인과관계에 대한 과학적 입증이 미비하더라도 제품으로 인한 피해가 의심되면 이를 미연에 예방하는 차원에서 해당 제품의 판매와 사용을 금지한다는 원칙이다. EU가 화학제품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이른바 'REACH Directive'라는 엄격한 화학물질의 사용과 이동에 관한 엄격한 규제 법안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무과실 책임이란 제조자가 피해를 끼칠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제조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제조자의 책임을 묻는 것이고, 징벌적 배상금은 동일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실제 피해금액보다 더 많은 배상을 하게 하는 제도이다.

이번 사건은 제품 안전 관련 법적 제도적 보완과 함께 강력한 소비자 운동의 활성화 필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킬 때이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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