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은 공화당 원내 1인자이자 당내 주류의 신망을 얻고 있는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먼저했다. 그는 지난 5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직 트럼프를 지지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라이언은 분열된 당을 하나로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며 당원들은 트럼프가 보수주의 가치와 원칙을 공유하는 지 먼저 알고 싶어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트럼프가 내놓은 주요 정책인 부자 증세와 자유무역 협정 반대, 출생 시민권 제도 폐지 등 강력한 이민 정책 등은 공화당의 전통적 정책과 노선과 한참 어긋난 것들이다.
그는 이밖에 11월 8일 총선거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이날 대선은 물론 의회 권력 지형을 가르는 하원과 상원 선거도 치러진다. 라이언 의장은 공화당의 이념과 정책에서 벗어난 트럼프에 ‘올인’했다가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 지위마저 놓치며 공멸할 수 없다는 배수진도 쳐놓은 것이다.
라이언 의장의 발언은 최근 당 주류들이 속속 트럼프 지지로 갈아타면서 당의 중심이 트럼프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것에 제동을 건 것이기도 하다.
공화당과 보수파에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부시 대통령 가문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아버지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과 아들 조지 W. 부시전 대통령 모두 트럼프 지지를 보류한 상태이고 전당대회에도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대선 후보였고 당 주류의 트럼프 낙마를 주도했던 미트 롬니도 전당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는 8일 NBC 방송 인터뷰에서 라이언 의장이 기습적으로 대선 후보인 자신의 뒤통수를 쳤다며 몰아붙였다. 롬니에 대해서도 지난 대선에서 많은 도움을 줬는데도 배은망덕한 일을 하고 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트럼프는 이밖에 “폴 라이언은 내가 공화당을 물려받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나는 물려받은 게 아니라 유권자 수백 만 명과 함께 쟁취해 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라이언을 비롯한 당 주류의 항복을 압박하고 나선 셈이다.
경선 도중 일찌감치 트럼프 캠프에 합류했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페일린 전 지사는 이날 CNN에 출연, “라이언 의장이 유권자들의 뜻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그를 반드시 낙선시키겠다고 위협하고 나섰다.
이 같은 상황에서 트럼프는 오는 12일 워싱턴DC에서 라이언 의장과 회동한다. 라이언 의장의 초청 형식으로 이뤄지는 당 지도부와의 상견례인 셈이다.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양측의 팽팽한 신경전에 불꽃이 튈 전망이다.
그러나 적전분열은 곧 공멸로 이어진다는 점을 양측이 모를 리 없다. 트럼프와 당 주류 사이에 일정시점에선 접점을 찾기 위한 치열한 물밑 협상도 병행될 전망이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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