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사태로 불거진 산은의 모럴해저드…모호한 정체성·구조조정 부담 분산 안되는 것도 문제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정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주채무계열인 산업은행의 짐이 무거워지고 있다. 구조조정 광풍(狂風)의 핵심에서 또다시 부실기업 채권을 '독박' 쓸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작년 대우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등 조선업체 부실을 짊어졌고 올 상반기에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연달아 자율협약을 신청하면서 산업은행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산업은행을 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전일 구조조정협의체에서 "산은의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부실경영 책임을 명확히 규명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칼자루를 휘두르지만 정작 산은의 능력과 의지가 빈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을 둘러싼 딜레마를 세가지로 정리해봤다.
특히 산은의 경영진이 정책금융에 정통한 전문가보다 정치권과 연이 닿는 인사로 채워지다보니 구조조정에서 실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대우조선해양 사태와 같은 부실문제에 대해선 산은에 명확히 책임을 물어야 이후 구조조정의 명분이나 추진력에 힘이 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② 설거지는 산업은행만?= 구조조정 이슈만 터지면 산업은행만 쳐다보는 구조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시중은행 중심의 '상시적 구조조정'인데 매번 설거지는 산업은행이 하게 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교수는 "누구나 밥은 먹기 좋아하는데 설거지는 하기 싫어한다"며 "시중은행들이 소매금융뿐만 아니라 기업금융에 역량을 갖고 구조조정을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최선"이라고 말했다.
③ 산은의 모호한 정체성도 문제= 산업은행이 정책금융기관인지 상업은행인지 여전히 모호한 정체성 역시 부실기업을 대하는 산업은행의 딜레마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영화와 정책금융공사 통합 논의를 거치면서 산은의 조직은 방대해지고, 정체성은 갈수록 모호해졌다. 정부도 갈팡질팡했다. 이명박 정권 시절 산은에서 정책금융을 분리, 민영화를 통해 글로벌 투자은행(IB)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 계획은 정권이 바뀌자 뒤집어졌다. 2013년 떼냈던 정책금융공사를 다시 붙이고 민영화는 없던 일이 됐다. 이러다보니 부실징후를 포착하자마자 꼬리자르기 식으로 바로 여신을 끓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혈세가 들어간 돈으로 무한정 지원을 해줄수도 없는 딜레마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산은이 부실기업 선정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지원해 줄 기업에 대해서는 과감히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윤석헌 교수는 "산은이 정부 소유의 은행인 만큼 정부와 커뮤니케이션을 잘해 앞으로 구조조정의 방향을 잡는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현 교수는 "조선 해운은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전략 산업'이라는 관점이 중요하다"며 "구조조정과정에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면 안되기 때문에 산은의 구조조정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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