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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희의 전시포커스]가족 향한 그리움의 절규 '이중섭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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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황소', 1953년경, 종이에 에나멜과 유채, 35.5x52cm

이중섭 '황소', 1953년경, 종이에 에나멜과 유채, 35.5x5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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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올해는 이중섭(1916~1956년) 탄생 100주년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비운의 천재화가' 이중섭. 그를 재조명하는 전시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지난 12일 제주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은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아내 이남덕(일본이름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편지 등 미공개 자료를 공개했다. 최근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은 이중섭을 주제로 한 전시를 시작했다. 이 미술관은 안병광(59) 유니온약품 회장이 지난 2012년 부암동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석파정을 복원하면서 함께 문을 연 곳이다. 안 회장은 개인 소장가로서는 이중섭 작품을 가장 많이 수집한 인물로 알려졌다. 서울미술관은 이중섭의 대표작인 '황소' 연작을 비롯, '아이들과 비둘기', '환희', 은지화 등 잘 알려진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 주제는 '이중섭은 죽었다'이다. '천재성', '광기'에 관한 이야기로 부풀려진 이중섭 신화를 걷어내고 가족을 너무나도 아꼈고 한 여자를 지극히 사랑한 한 화가의 인생을 조명하기 위해 선택한 주제다. 전시는 그가 묻힌 서울 망우리 묘지를 찍은 사진으로부터 시작된다. 묘지에는 비석도 추모비도 없다. '국민화가'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쓸쓸하다. 관람 동선은 대구와 서울 등 그가 치료 받은 병원을 재연한 공간에서 창작에 몰두한 통영 시절, 대구와 서울에서의 개인전, 제주 서귀포 시절, 20대 이중섭이 유학한 일본 도쿄에서의 삶으로 이어진다. 죽음에서 청년기까지 역순으로 이중섭의 인생을 비추며 그가 남긴 작품들을 만나게 한다.
또한 한 그림 수집가가 이중섭 그림과 맺은 인연과도 연결된다. 전시장에 나와 있는 이중섭 작품은 스무 점이다. 이 중 열일곱 점이 안 회장의 소장품이다. 개인 소장인 '통영 앞바다'를 이번 전시를 위해 대여했고, '자화상'과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은 복제본이다. 이외에 그동안 알려진 그림엽서들을 프린트로 정리했다. 이중섭의 '소' 그림 연작은 단연 돋보인다. '황소', '피 묻은 소', '싸우는 소' 등 세 점이 나왔다.

이중섭 '황소'를 설명하고 있는 안병광 회장

이중섭 '황소'를 설명하고 있는 안병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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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 연대미상, 20.3x32.8cm, 복제품

이중섭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 연대미상, 20.3x32.8cm,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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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가족', 1953년경, 은지에 새김, 유채,  8.5x15cm

이중섭, '가족', 1953년경, 은지에 새김, 유채, 8.5x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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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환희', 1955년, 종이에 에나멜과 유채, 27x39cm

이중섭, '환희', 1955년, 종이에 에나멜과 유채, 27x3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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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는 2000년대 초반부터 그림 수집에 열중한 안 회장이 2010년에 경매에서 35억6000만원을 들여 사들인 그림이다. 안 회장과 '황소'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33년 전인 1983년 안 회장은 서울 명동 성모병원 맞은편에 있는 한 화랑에서 '황소'를 처음 접했다. 유화가 아니라 사진이었다. 왠지 모르게 끌리는 그림이었다. 안 회장은 사진으로 복제한 '황소'를 7000원에 샀다고 했다. 그로부터 5년 뒤,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로 이사한 안 회장은 시인 구상(1919~2004년)을 만난다. 시인과 아래위층에 10년 가까이 살면서 이중섭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구상은 이중섭이 형이라 부르며 따랐던 사람이었다.

세월이 흘러 '황소' 진본이 경매에 등장하는 소식을 들었다. 빌딩 한 채 가격이었다. 안 회장은 소장하고 있던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을 팔아서까지 돈을 보태 '황소'를 손에 넣었다. 몇 년 전 누군가 '황소'를 80억원에 사겠다고 했지만 안 회장은 "외양간(미술관)을 지었는데 소가 없으면 되겠느냐"는 심정으로 대번에 거절했다. 이중섭이 '황소'를 그린 시기는 그가 그림에 정진해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나겠다는 의지가 충만했던 시절로 추측된다. 그림은 화가의 외로운 투쟁을 보여주는 듯 폭발할 듯 내연하는 에너지로 충만하다.
거의 유일한 이중섭의 '자화상'은 정신병원을 드나들던 시기의 그림이다. 이중섭은 1955년 전시를 두 차례 열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자화상은 피폐한 그의 내면을 반영한다. 이중섭은 세상이 그를 '미쳤다'고 손가락질 할 때, 자화상을 그려 자신이 건재함을 알리고자 했다.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은 1946년 첫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죽자 슬픔을 이겨보려고 그린 그림이다. 이승을 떠난 자식이 저승에서 외롭지 않도록 꼬마 여러 명과 천도복숭아 나무를 그렸다. 이 그림을 그리기 직전 이중섭은 선배인 구상과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고 한다.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은 안 회장이 한때 소장했고 지금은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이 된 작품이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지난 2005년 3월 미술경매에 등장한 이중섭의 작품 여덟 점이 위작 파문에 시달렸다. 이듬해 모 화랑 대표가 '이중섭을 다시 살리자'는 뜻으로 안 회장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이중섭 작품을 경매에 내놓아 달라는 제안을 했다. 그때 출품한 작품이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과 '통영 앞바다'였다. 안 회장은 "가장 아꼈던 그림 두 점을 판 쓰린 기억이다. 1년 안에 내 그림을 다시 데려올 거라고 다짐했는데,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며 아쉬워했다.

제주나 통영이 이중섭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중섭은 1916년 4월 10일 평안남도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 742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많아 여러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1934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일본 도쿄에 있는 도쿄문화학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일 년 후배인 이남덕과 사랑에 빠졌다. 서른 살에 결혼식을 올렸고 그해 광복을 맞았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과 제주, 또다시 부산으로 피난길에 오르면서 결국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낸다. 그리고 홀로 통영, 서울, 대구 등지에서 머물면서 그림을 그려 나갔다. 전시도 여러 차례 열고 때로는 성공도 했지만 그림 값이 잘 걷히지 않아 생계가 어려웠다. 외로움과 그리움, 좌절감에 고통스러워하다 마흔네 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정신이상으로 죽었다는 루머가 있지만, 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에는 '간장염으로 인한 여러 합병증으로 사망한 무연고자'로 기록돼 있다. 전시는 5월 29일까지. 문의 02-395-0100.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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