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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도 내 자식?" 이우환 위작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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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미인도'논란 또하나의 복사판, 미술계 발칵

사진 = 위작 논란에 휩싸인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사진 = 위작 논란에 휩싸인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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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re you?”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체인질링’에서 싱글맘 크리스틴(안젤리나 졸리)은 실종된 아들을 찾았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달려간 자리에서 아들이 아닌 다른 소년을 마주한다. 경찰과 언론의 등쌀에 떠밀리듯 아이를 집으로 데려온 크리스틴은 소년을 보고 묻는다. 넌 누구냐고. 아이는 천진한 표정으로 그녀를 엄마라 부른다. 자신을 둘러싼 거짓에 분노한 여인은 이내 소리친다. “난 네 엄마가 아냐!”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자기가 낳지 않은 아이를 남들이 당신 자식이라고 윽박지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영화 대사가 아니다. 지난 1991년 봄, 위작논란에 휩싸인 ‘미인도’를 두고 작가 천경자가 한 말이다. 그녀는 ‘미인도’는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작품을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는 진품이라 판정했다. 천 화백은 이 사건으로 인한 충격으로 이후 절필을 선언했다.

<조응>, 이우환, 캔버스에 안료, 130.3*97cm, 1994, 노화랑

<조응>, 이우환, 캔버스에 안료, 130.3*97cm, 1994, 노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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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작품 중 가짜는 없다
점과 선의 미학으로 유명한 작가 이우환의 작품도 최근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한국 생존 작가 중 작품값이 가장 비싼 것으로도 유명한데, 작년 10월 경찰은 그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위조해 유통한 혐의로 인사동의 한 화랑 대표 A씨를 입건하고 해당 화랑을 압수수색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이우환의 작품을 위조, 가짜 감정증명서를 첨부해 경매에 내놓는 방식으로 100억 원대 수입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으나, 이후 감정 전문가들이 위작으로 판단한 작품을 본 이우환 화백이 가짜는 없다고 답하면서 논란이 한층 가중됐다. 이 작가 측은 위작 여부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현재 전작 도록(카탈로그 레조네)을 준비 중이다.

<흰소>, 이중섭, 합판에 유채, 30*41.7cm, 1953~54년경, 홍익대박물관

<흰소>, 이중섭, 합판에 유채, 30*41.7cm, 1953~54년경, 홍익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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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서 vs 출처

위작 논란이 있는 작가의 작품거래에선 전문가의 감정보다 작품의 출처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나 지난 2005년 불거진 이중섭 위작사건은 이 화백의 아들이 유품으로 물려받았다며 경매에 내놓은 작품이 모두 가짜로 판명되면서 가족 또한 안전한 출처가 될 수 없음을 시사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유명작가의 위작논란은 잦아들긴커녕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한탕을 노리는 투기심리와 검은돈을 세탁하기 위한 매개로서 작품을 이용하려는 탐욕이 깔려있다. 진품은 하나인데, 그 수요는 넘쳐나니 위작이 끊이질 않는다. 과정 또한 점차 정교하고 치밀해지면서 전문 모사꾼이 제작을 맡고, 업자가 유통을 맡는 소위 ‘공장’이 가동되게 되는데, 여기서 지속적으로 가짜 미술품을 양산하고 있다.

가짜에서 진짜를 배워야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는 1999년 고서화 위조 전문범인 권모씨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자신이 미인도를 위조했다고 증언하면서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미술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증언 이후 권모씨가 위조한 천 화백의 작품이 인기리에 팔렸다고 한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을 역임한 토머스 호빙은 자신의 저서 ‘짝퉁 미술사’에서 위작 감정가가 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일류 위조꾼을 만나 제작에 얽힌 비밀을 직접 배우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검찰은 지난 2007년 이중섭, 박수근 위작사건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위작 2800여 점으로 위작 전시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무산되었다. 비교를 통한 감식안을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가 날아간 셈이다.

쏟아지는 가짜의 싹을 자르려면 전문 감정인력 양성과 함께 공신력 있는 감정기관 운영이 절실하다. 그러나 이미 거래된 작품을 작가별로 일일이 찾아내고 데이터화 한 뒤 전작 도록을 만드는 작업도 버거운 현실에 해당 작품별 거래내역까지 투명하게 기록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우환 작가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작품을 경매에서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내 작품을 경매에 내놓고 사고파는 사람들은 내 작품이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돈이 된다니까 마구 모이는 것이지 진정 내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작품의 진위여부를 향한 관심이 애정이 아닌 욕망에 기인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작가의 외침은 아니었을까. 미술애호가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작품에 대한 마음만큼은 적어도 진짜여야 한다. 여러모로 가짜가 판을 치고 있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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