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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여행가의 밥] 교토의 사색 정원과 산채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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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서 느려터진 버스를 타고 12킬로미터를 굽이굽이 돌아 들어가면 오하라(大原)라는 산골에 닿는다. 관광객 물결이 넘실대든 말든 밭을 일구며 열심히 생활하는 시골 사람들의 순박함이 여행자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새 생명 움트는 봄이면 봄 나름대로 멋이 있고 빽빽이 우거진 나무숲의 색이 짙은 초록으로 조금씩, 조금씩 바뀌는 여름과 빨갛게 물드는 산과 황금물결 넘실대는 가을, 하얀 눈을 뒤집어쓴 채 잠자코 봄을 기다리는 산골의 겨울 풍경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해를 시작하기 전,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독이거나 한없이 느슨해진 마음에 바람을 불어 넣으려면 산골 마을 오하라만한 곳도 드물다.


교토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가면 도착하는 산골 마을 오하라. 유서 깊은 여러 사찰이 자리하며 산골에서 자란 청정 식재료로 만든 슬로 푸드를 맛볼 수 있다.

교토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가면 도착하는 산골 마을 오하라. 유서 깊은 여러 사찰이 자리하며 산골에서 자란 청정 식재료로 만든 슬로 푸드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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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마을의 숨은 보물, 사색 정원 호센인

산골 마을에는 유명한 절이 여럿 있다. 일본의 한 작가가 ‘동양의 보석상자’라 극찬한 산젠인, 일본을 대표하는 고전문학에도 등장하는 잣코인도 있다. 그러나 내가 편애하는 곳은 호센인이라는 아주 작은 사찰이다. 처음 손에 쥔 정보라고는 ‘일본을 대표할 만한 멋진 대나무 정원을 가진 사찰’이라는 한 줄이 전부였다.


2미터 높이, 4미터 폭의 객전 기둥 두 면이 액자를 대신하고 그 안에는 곧게 뻗은 짙푸른 대나무 풍경 한 폭,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수령 700년이 넘었다는 노송이 연출하나 또 한 폭의 풍경이 펼쳐진다. 입구에 들어설 때는 푸른 잎만, 건물 안쪽에서 바라보면 구불구불한 가지를 몽땅 그러내 보여 야누스를 떠올리게 하는 노송은 교토 시의 천연기념물인 동시에 교토를 대표하는 3대 소나무 중 하나라고 한다. 다다미 위에 깔린 빨간 천에 앉아 달달한 화과자로 입속에 쓴맛 주의보를 울리며 푸른색의 말차 한 잔을 마시면서 자연과 인간이 빚은 꿈틀거리는 풍경화를 감상하다 보면 여행 중이라는 사실도 망각하게 된다.


‘나야말로 전형적인 일본 정원’임을 뽐내는 액자 정원도 호센인으로 자꾸 마음이 가게 하는 주인공이지만 여행객의 마음을 홀리는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 ‘은은함’이란 단어의 뜻을 곱씹어 보게 하는 스이킨쿠츠다. 대나무 정원 앞쪽에 두 개의 대나무가 땅으로 꽂혀 있는데 대나무 구멍에 귀를 대고 가만히 있으면 여리고 여린 물방울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스이킨쿠츠는 땅속에 물 항아리를 묻고 물을 떨어뜨려 수면에 부딪치는 물소리를 즐기는 장치로, 일본을 방문한 빌 게이츠 회장의 마음을 단숨에 빼앗아 다시 이름값을 드높인 메이드 인 재팬이다. 품격 높은 문화의 도시 교토에는 사찰은 물론 식물원에도, 밥집에도 심지어 기념품 숍에도 스이킨쿠츠가 놓여 있을 정도로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다. 교토의 무수한 스이킨쿠츠 중에 내가 가장 어여삐 여기는 곳도 호센인의 그것이다. 살아 있는 액자 정원에서 긴 사색에 빠진 사람들 틈에서 다소 민망한 자세를 취하고 대나무 구멍에 귀를 대야 하지만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따뜻하게 끓어오른다.


호센인은 사찰 주지의 숙소로 대나무 정원과 천연기념물인 소나무가 명물이다.

호센인은 사찰 주지의 숙소로 대나무 정원과 천연기념물인 소나무가 명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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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화과자를 먹고 말차 한 잔을 비운 다음 남은 일은 지겨울 때까지 액자 정원 감상하기.

달달한 화과자를 먹고 말차 한 잔을 비운 다음 남은 일은 지겨울 때까지 액자 정원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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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 정원이 눈을 맑게 한다면 스이킨쿠츠는 귀를 맑게 한다. 땅속에 물 항아리를 묻고 물을 떨어뜨려 수면에 부딪치는 물소리를 즐기는 장치로, 빌 게이츠도 반해 자신의 집에 설치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액자 정원이 눈을 맑게 한다면 스이킨쿠츠는 귀를 맑게 한다. 땅속에 물 항아리를 묻고 물을 떨어뜨려 수면에 부딪치는 물소리를 즐기는 장치로, 빌 게이츠도 반해 자신의 집에 설치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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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밥집의 명물 도시락, 세료

교토대학교 근처의 고서점가에서 책 삼매경에 빠져 있던 중 한 권의 진귀한 책을 발견했다. <교토의 맛>이라는 심플한 제목이 달린 음식책이었는데 교토의 한 귀부인이 추천하는 맛집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또 한 번 교토의 저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됐는데, 1970년대 출판된 책에 소개된 맛집의 70~80퍼센트가 현존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떵떵거리며 성업 중인 곳이 많았다.


‘명물 세료 벤토(=도시락)는 산채를 재료로 하여 우아한 용기에 담겨 나온다. 국은 제철 채소, 팽이버섯 밥, 반찬으로는 생표고버섯, 막 싹을 틔운 파릇파릇하게 데친 고사리, 죽순, 무채, 달달하게 조린 매실 등 한적한 시골 향기로 가득하다’라는 소개글 그대로 명물 3단 도시락인 미치쿠사 벤토는 오하라의 산채 요리가 중심이 된 술로 푸드다. 오하라는 마음의 근심을 털어낼 수 있는 해우소이고, 세료의 산채 요리는 몸의 근심을 털어내는 디톡스 푸드다.


오하라라는 산골 마을의 세료는 산채를 중심으로 한 음식을 선보인다.

오하라라는 산골 마을의 세료는 산채를 중심으로 한 음식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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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료의 명물 도시락인 미치쿠사 벤토.

세료의 명물 도시락인 미치쿠사 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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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 도시락에는 표주박 모양의 채소밥에 송이버섯 된장국, 고사리데침, 죽순조림 등이 담겨 있다.

3단 도시락에는 표주박 모양의 채소밥에 송이버섯 된장국, 고사리데침, 죽순조림 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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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곤소곤 Tip

오하라에서는 매주 일요일이면 아침 시장이 열린다. 이름 하여 오하라 후레아이 아사이치. 아침 6시부터 9시까지 그야말로 반짝 열리는 도깨비 시장이다. 산골 마을의 비옥한 밭과 깨끗한 물을 자양분으로 큰 채소와 채소절임, 들과 산에서 수확한 산나물로 빚은 떡, 야생화 등이 총출동한다.

시장의 명물은 사카타 할머니가 만드는 스구키라는 순무절임이다. 할아버지와 함께 손수 농사를 지은 순무에 물과 소금만을 넣어 발효시키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힌다. 교토의 유명 레스토랑 셰프들이 굽신거리며 할머니의 채소절임 공수에 공을 들이며 단골들이 많아 서둘러 찾지 않으면 품절되어 버리는 인기 상품이다.


Infomation

일본정부관광국 서울사무소 http://www.welcometojapan.or.kr

호센인 www.hosenin.net, 075-744-2409, 입장료 800엔(화과자와 말차 포함)

세료 www.seryo.co.jp, 075-744-2301, 08:00~21:00(점심 식사는 낮 12시부터~), 미치쿠사 벤토 2,756엔

오하라 아침 시장 075-744-4321, 06:00~09:00 매주 일요일, 사토노에키오하라에서 열림


글·사진=책 만드는 여행가, 조경자(http://blog.naver.com/travelfo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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