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때때로 여행가의 밥] 전주 막걸리집과 가맥집

최종수정 2020.01.22 17:44 기사입력 2016.01.03 11:30

댓글쓰기

어느 해 가을, 나와 절친은 추석 연휴를 피해 도망치듯 짐을 샀다. 우리가 즉흥적으로 향한 곳은 전주. 막걸리집과 가맥집을 전전하다 양사재의 뜨끈한 온돌방에서 지친 몸을 뉘고 다음날 콩나물국밥 한 그릇으로 속을 풀었다. 언제부터인가 열두 장 중 이제 하나만 남은 달력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전주가 떠오른다. 옛이야기 옛 물건, 옛 건물, 전통문화가 비빔밥처럼 뒤섞인 그곳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면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덜어낼 수 있으므로, 그래서 섣달그믐 밤은 전주로 가야 한다.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겨울나무처럼 마음이 휑한 한 해의 끝무렵에는 전주로 간다.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겨울나무처럼 마음이 휑한 한 해의 끝무렵에는 전주로 간다.



주당들이 몰려드는 막걸리 성지, 전주의 막걸리 골목. 친구 또는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삶에 반짝 해가 뜨는 기분이 든다.

주당들이 몰려드는 막걸리 성지, 전주의 막걸리 골목. 친구 또는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삶에 반짝 해가 뜨는 기분이 든다.

수고했어, 올해도! 옛촌막걸리

어설픈 실력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가는 영구 퇴출될 확률이 높은 맛의 도시 전주에서 지겹다는 푸념을 들어도 막걸리 이야기를 꺼내련다.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 친한 후배와 후배가 모셔 온 전주 사람과 함께 저녁도 거르고 옛촌막걸리를 찾았다. 삼천동의 막걸리 맛이 다르고, 서신동이 다르고, 경원동이 다르다 하니 막걸리 성지 전주에서 ‘어디로 가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길을 잃은 우리에게 전주 사람은 이 집으로 기꺼이 안내했다.


대기석에 자리를 잡고 막걸리 마시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시간을 보내니 드디어 우리의 테이블이 마련됐다. 주문 공식은 “막걸리 한 주전자요!” 곧 양은 주전자에 그득한 막걸리와 김치전, 김치찜 등의 푸짐한 안주가 등장했다. 주전자를 비우고 났더니 홍합탕과 생굴, 꽁치구이 등 해산물 안주로 바뀌는 게 아닌가! 삼계탕, 간장게장, 산낙지 등 황송한 상을 받으려면 친구들 여럿과 어울려 가면 된다(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두 사람일 경우 개별 안주 주문이 가능하다는 주당들의 제보가 잇따른다). 좋은 벗과 푸짐한 안주 그리고 막걸리. 홍어삼합이 부럽지 않은 조합이다. 아무리 잘 산 것 같아도, 빨리 보내고 싶은 한 해라도 어쩐지 울적해지는 연말이면 막걸리 골목이 떠오른다.


전주에는 삼천동, 서신동, 경원동 등지에 막걸리 골목이 있다.

전주에는 삼천동, 서신동, 경원동 등지에 막걸리 골목이 있다.



안주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전주의 막걸리 골목. “막걸리 한 주전자요!”만 외치면 맛고을 전주를 빛낼 푸짐한 안주 릴레이가 펼쳐진다.

안주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전주의 막걸리 골목. “막걸리 한 주전자요!”만 외치면 맛고을 전주를 빛낼 푸짐한 안주 릴레이가 펼쳐진다.

맛있고 푸짐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주당들을 불러 모으는 전주 막걸리집, 옛촌막걸리.

맛있고 푸짐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주당들을 불러 모으는 전주 막걸리집, 옛촌막걸리.




전설의 가맥집, 전일슈퍼

막걸리도 못 마시는 주제에 전주 막걸리 노래를 부르자 전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후배는 가맥집도 있다는 솔깃한 정보를 흘렸다(대학 방송국원 시절, 수습 시간을 마치면 막걸리 한 대접을 마시는 사발식을 거쳐야 했다. 뭣 모르고 막걸리 한 대접을 제일 먼저 마시고 헉헉거리는 동기의 사발도 빼앗아 마셔줬건만…. 이후 나의 막걸리 주량은 딱 한 잔이다).


가맥집이라니? 가게 맥주의 줄임말이 가맥. 전주에서만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왜 전주에서는 가게에서 맥주를 팔까? 후배의 설명에 따르면 맥주 공장 근처의 가게에서 파는 맥주는 갓 만든 신선함으로 가득 차 있고 그 맛을 알아챈 사람들이 가게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설을 설파했다.


전주 사람을 따라 전일슈퍼를 찾았다. 가양주처럼 집에서 만드는 술이 아니니 맥주 맛이야 거기서 거기. 히트의 열쇠는 달달한 소스에 찍어 먹는 황태구이와 달걀말이가 쥐고 있었다. 연탄불에서 몇 미터 떨어져 구워야 맛이 나는지 황금 비율을 찾아낸 주인이 구워내는 황태구이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게 했다. 가맥집을 나오던 길, 사레에 걸린 후배에게 먹일 요량으로 물을 사러 앞집 슈퍼, 옆집 슈퍼로 뛰어가다가 ‘아차!’ 싶었다. 전주의 슈퍼에는 물 대신 맥주가 진을 치고 있었다.


전주에는 가맥집이 많다. 가게 맥주의 줄임말이 가맥. 그러나 가맥이란 간판을 단 집은 없고 모두 슈퍼 간판을 달고 있으니 주의!

전주에는 가맥집이 많다. 가게 맥주의 줄임말이 가맥. 그러나 가맥이란 간판을 단 집은 없고 모두 슈퍼 간판을 달고 있으니 주의!



전주의 가맥집 중 한 곳인 전일슈퍼. 연탄불에 굽는 황태구이와 특제 소스맛으로 충성 맹세한 단골들이 많다는 후문이다.

전주의 가맥집 중 한 곳인 전일슈퍼. 연탄불에 굽는 황태구이와 특제 소스맛으로 충성 맹세한 단골들이 많다는 후문이다.




소곤소곤 Tip

주당들을 술독에 빠지게 하는 전주는 고맙게도 속을 달래주는 콩나물국밥집이 흔해 빠졌다. 남부시장의 콩나물국밥집에서는 커다란 통에 육수를 팔팔 끓이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뚝배기를 토렴하여 밥을 뜨거운 육수에 말아서 낸다. ‘남부시장식 국밥’이라 부르는데, 운암식당과 현대옥이 이름나 있다. 밥공기탑과 ‘손님이 주무시는 시간에도 육수는 끓고 있습니다’라는 슬로건, 전주식 김치 맛이 인상적인 왱이콩나물국밥집도 유명하다. <식객>에 등장하는 삼백집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욕을 날린 욕쟁이 할머니가 운영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비빔밥과 함께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사랑받는 콩나물국밥.

비빔밥과 함께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사랑받는 콩나물국밥.



시장 상인들과 어깨를 맞대고 후루룩 한 뚝배기를 비울 수 있는 남부시장의 콩나물국밥.

시장 상인들과 어깨를 맞대고 후루룩 한 뚝배기를 비울 수 있는 남부시장의 콩나물국밥.




Infomation

전주시청 063-222-1000, http://tour.jeonju.go.kr

옛촌막걸리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신천변로 11, 063-272-9992, 16:00~01:00

전일슈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현무2길 16, 063-284-0793, 15:00~01:30

운암식당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2길 63 남부시장 2동 80호, 063-286-1021, 05:30~17:00

현대옥 남부시장점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2길 63 남부시장 2동 74호, 063-282-7214, 06:00~14:00, 명절 당일 휴무

전주왱이콩나물국밥 전북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2가 12-1, 03-287-6979, 24시간 영업

삼백집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2길 22, 063-284-2227, 24시간 영업


글=조경자(http://blog.naver.com/travelfoodie), 사진=황승희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