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옛 사건파일'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아내와 장모를 포함해 10명을 살해한 강호순. 그의 행각을 ‘쾌락성 살인’이라고 규정한 사람은 범죄 프로파일러인 경찰청 김원배 연구관이다. 30년간 숱한 살인을 분석해온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살인범’을 물었더니 이동식을 든다. 전문가가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이 살인자는 어떤 사람일까.
보일러공 이동식(당시 42세, 전과4범)은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이었다. 그는 1982년 11월 이발소에서 만난 면도사 김모양(24세)과 가까워진다. 이씨는 버스안내양을 모델로 찍은 자작 사진집을 김양에게 보여준다. “출세시켜줄게. 나랑 누드 찍으러 가자.” “안돼요. 일해야 돼요.” “내가 일당 5만원을 줄게. 하루 쉬어.”
이동식은 결혼 이듬해인 1976년 코비카 카메라를 구입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진에 입문한다. 이후 10여 차례의 대회 입상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좀 더 극적인 장면을 찍고 싶었다.” 그가 경찰에서 실토한 자백이었다.
당시 중앙일보는 이 사건에 대한 전문가 견해를 실었다. 사진평론가 이명동씨는 “140여년의 세계 사진 역사에서 사람의 죽어가는 표정을 담기 위해 살인을 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고 놀라워하면서 “범인이 찍은 사진을 예술 운운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못박는다. 그는 로버트 카파의 ‘어느 병사의 죽음’(1938년 9월 5일, 스페인 코르도바 전선, 죽어가는 병사를 촬영함)과 비교하면서, 이동식의 경우는 “무식하고 무모한 결정적 순간의 시도”라고 비판한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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