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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돈이다]응답하라 1988, 그때를 아시나요?

최종수정 2015.11.19 10:27 기사입력 2015.11.1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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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은마아파트가 5000만원하던, 은행이자가 15%였던 쌍팔년도…그때를 아십니까?

(왼쪽부터)1979년 신문에 실린 은마아파트 입주광고. 평당 분양가 68만원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오른쪽 TV사진은 1982년 한복을 입고 은마아파트 앞을 지나가는 아낙네들의 모습

(왼쪽부터)1979년 신문에 실린 은마아파트 입주광고. 평당 분양가 68만원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오른쪽 TV사진은 1982년 한복을 입고 은마아파트 앞을 지나가는 아낙네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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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돈을 '쩐의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의인화해서 1인칭 시점으로 작성했습니다.

"금리가 요즘 쪼까 내려가지고 15%여. 그래도 목돈은 은행에 넣어놓고 이자 따박따박 받는게 최고지라."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혜리 역) 아빠로 나오는 성동일은 이렇게 말하지. 5000만원을 은행예금으로 넣어두고 이자를 받으라는 조언을 하는거야. 격세지감이지? 지금 기준금리는 여기에 1/10. 15% 사이에 점이 떡하니 붙어 1.5%잖아. 놀라운 건 금리뿐만이 아니야. 은행이자는 재테크로 삼기에 낮다며 매매가 5000만원 은마아파트를 권하는 거야. "은마아파트가 그렇게 오를 줄 알았으면 왕창 사놓는건데…"하며 땅을 치며 후회하는 사람도 있을거야.

◆ 상고생의 꿈, 은행원 그 당시엔 어땠나?

극중에서 성동일은 한일은행(지금의 우리은행) 만년 대리로 나와. "화이트 칼라로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 안당가..."라는 대사처럼 1980년대만 해도 은행원은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출퇴근하는 귀한 사무직이었어. 당시엔 상업 고등학교 출신들이 대거 은행에 입행해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이기도 했지. 상업고 출신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영어, 주산, 상식, 작문, 부기 시험 과목을 공부해야 했지. 그렇게 해서 시험에 턱 붙으면 동네방네 잔치가 열렸지. 가문의 영광이자 동네의 자랑 아니었겠어.
그 무렵 명문 상업고는 은행반을 따로 만들어 공부를 시켰지.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형 은행마다 매년 200~300명의 고졸 신입 행원을 뽑았던 시절이었어. 이명박 정부 시절 고졸채용 붐을 타고 몇몇이 은행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대학 졸업자도 들어가기 어려운 은행 문턱을 넘은 고졸자가 많아봐야 얼마나 많았겠어.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의 시절에는 고졸 채용이 정점이었지.

당시 은행원의 업무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지. 투자은행(IB)이나 자산관리 개념보다는 전산화 이전의 단순 업무가 주를 이루던 시대였거든. 은행에 입사하면 수납, 교환, 보통계, 환업무, 지불계, 계산계 등을 거치면서 행원으로서 성장해갔지. 당시엔 전표를 모으고 분류해 편철하고 매일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 총계정원장차감잔액장에 일일이 손으로 작성했어. 문서에 숫자하나 틀리면 손톱으로 긁어서 수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날엔 선배한테 "야, 대차대조표 판이 가렵대? 그래서 긁어줬냐?"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지.

1990년대 들어서면서 고졸자보다는 대졸자 행원들이 늘었지. 그 시절엔 '주판 노이로제'를 호소하는 행원들이 많았대. 당시엔 행원이었고 지금은 실장인 박 모씨는 이렇게 회고해. "지금은 엑셀로 엔터키만 치면 되는 일이었는데 당시 대졸자들은 주판을 못했어. 10분 동안 할 일을 주판으로는 2분이면 끝나는데 적응하기가 힘들었지."

은행원인 성동일 이웃으로 등장하는 졸부 김성균이 포니차를 끌고 외식하는 장면도 재미 있지? 실제로 1980년대에는 1300cc 포니차를 끈 운전 기사가 은행 지점장을 모시고 다녔어. 그때 은행 지점장의 위상은 고관대작도 부럽지 않았지.

◆ 준비하고 쏘세요! 주택복권이 유행하던 시대

"준비하시고 쏘세요!" 이 구호 기억나? 주택복권 추첨을 할 때 진행자가 이렇게 외치면 사람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숨을 죽이며 과녁을 뚫어져라 봤지. 번호가 적힌 원형 회전판을 화살로 맞혀 당첨번호를 결정하는데 주택복권의 상징과도 같았지. <응답하라 1988>에서 김성균은 주택복권 1등에 당첨돼 하루 아침에 졸부가 되지.

1969년 9월 15일 처음 발행된 주택복권은 마지막 회차인 1473회(2006년 3월 26일)까지 서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며 벼락부자의 꿈을 꾸게 했지. 한국주택은행은 무주택 군경 유가족, 국가 유공자, 파월장병의 주택 자금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주택복권을 팔았어. 90년대 들어 소득 규모가 높아지면서 주택복권에 대한 기대 심리도 낮아졌지. 그러다가 2002년 로또 복권의 등장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37년의 생애를 끝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졌지.

한장한장 찢으며 넘기는 은행 일력도 드라마에서 종종 나와. '은행 달력을 걸어놓으면 돈이 들어온다'는 속설 때문에 집집마다 은행 달력을 걸어뒀지. 그때는 스마트폰은 커녕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니 달력이 꼭 필요했어. 요즘엔 일력을 발행하는 시중은행은 거의 없지. 달력 생산량도 많이 줄었지.

◆ 복고 트렌드 유행하는 이유는

웬 쌍팔년도 이야기냐고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옛시절을 추억하고 향수를 느끼지. 사람들은 왜 금리가 15%, 은마아파트가 5000만원하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향수에 젖는 걸까. 누군가는 1988년도를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섹스, 스크린, 스포츠의 머리글자. 독재 정권이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주력했다는 비판을 받아옴)의 암운이 가시지 않았던 시절로 기억하고, 또 누군가는 지독히 가난해서 수학여행 용돈도 받기 어려웠던 시절로 회고해. 그래도 그때는 일자리가 많아서 누구나 열심히 일을 하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었지. 공장을 짓고 아파트를 세우고 자동차를 생산하느라 분주했고, 덕분에 가계 수입은 조금씩 늘어났지. 정치적으로 암울한 시절이었지만, 여전히 배고팠던 시절이지만 사회는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성장은 정체되고 정치는 답답하고.

'복고트렌드'란 책을 쓴 럭키백은 복고에 유행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지. "사람들이 현실이 힘들수록 복고에 집착하는 면도 있지만 과거의 좋은 추억을 공유해 새로운 문화융합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일 수 있다." 또다른 전문가는 "복고를 통해 '안락했던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이나 긴장감, 피로감을 줄이려고 한다"고 말해. 대중문화에서 유행하는 복고의 분위기는 사회적 피로감에 찌든 개인에게 위로감이 된다는 거지. 누군가 불확실성이 우리시대의 키워드라고 말했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시대다 보니 그렇게 우린 자꾸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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